자폐인들 삶에 마법을 일으킨 디자인

머니투데이 백선기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쿨머니에디터 | 2016.07.16 10:00

[쿨머니,가치를 만드는 소비]자폐인을 디자이너로 키우는 사회적기업' 오티스타'

편집자주 | 소비는 ‘나’를 표현하는 확실한 도구이다. 그 속에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어떤 소비는 사회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해소한다. 생산자들과 같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업체와 함께 하는 소비자들이 그러하다. 머니투데이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가치소비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사회적경제 브랜드들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폐인들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장애인들 중에서도 가장 취업률이 낮은 대상이 자폐인이다.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성이 결여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이들은 지난 4월 삼성전자와 협업해 최신 휴대폰케이스 7종류를 디자인했다. 롯데그룹의 사보 표지 디자인도 맡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디자이너 7명 가운데 3명이 내로라하는 기업에 취업했다. 이들 중 2명은 재능을 인정받아 일반기업이 먼저 채용을 제안했다. 사회적기업 오티스타(www.autistar.kr)가 일궈낸 마법같은 이야기다. 8일 그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찾아갔다.

◇ 직원11명 중 7명이 자폐성 장애를 지닌 디자이너

딸랑딸랑 종이 울리자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던 디자이너들이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일제히 눈길을 주었다.

“여러분! 오늘 축하해줄 일이 있어요. 사보 표지 디자인이 최종 결정됐는데요, 이번 호엔 정윤석 씨의 작품이 선정됐네요.”

박혜성 오티스타 이사(39)의 말에 맨 앞자리에 앉았던 정윤석씨(21)가 “야호!”소리를 외치며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치켜들었다. 함께 있던 동료들의 축하박수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정씨의 작품은 올해 벌써 2번이나 롯데그룹 사보의 표지를 장식했다. 지난번엔 야구, 이번 호는 음료를 주제로 한 것이다. 그에게 소감을 묻자 "좋다"라고 짧게 답했다. 특수교육학 전공자인 박 이사가 무엇을 그렸느냐고 묻자 "탄산음료나 맥주는 안 마시지만 잘 그릴 수는 있다"고 답했다.

이런 대화 속에서 자폐인 디자이너들을 모르는 누군가는 뭔가 다르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사회성 부분이다. 박 이사는 "내 역할은 디자이너들의 숨겨진 재능을 밖으로 끌어내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그들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티스타의 정규직원은 11명. 이 가운데 7명이 자폐인 디자이너들이다. 오티스타 디자이너들은 사무실 주변의 우체국과 식당을 스스럼없이 드나든다. 대부분의 자폐인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행동이다. 박 이사는 "일반인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른 편이다"며 "주변 분들이 자폐에 대한 이해가 높아 실수를 해도 눈감아주거나 중요한 상황은 회사로 확인 전화를 걸어준다"고 설명했다.
오티스타를 설립한 이소현이화여대특수교육학과교수(중앙)와 직원들. 직원11명 가운데 7명이 자폐성장애를 지닌 디자이너들이다. 사진제공=오티스타

◇ "좋아하는 걸 잘하게" 재능을 키워 자립을 돕는 복지 모델

디자이너들은 ‘오티스타’가 진행하는 디자인스쿨을 거쳐 선발됐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이 걸린 결과다. 오티스타는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의 산학협력 활동결과로 설립됐다. 이화여대와 SK플래닛이 연구비를 지원하고 이 대학 특수교육학과의 이소현 교수(56)가 자폐성 장애인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형태다.

이 교수는 “장애로 생긴 특성 중 하나가 시각적인 기억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난 점”이라며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재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복지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자인스쿨은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디자인 수업이라 이름 붙였지만 그들을 지도하는 건 특수교육학과 연구진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디자인기술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재능을 끌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9회에 걸쳐 200여 명(누적인원 기준)이 참가했다.

지난 6월 마감한 올 하계 디자인스쿨 모집에는 정원의 3배 이상이 몰렸다. 이 교수는 수강생을 뽑거나 직원을 선발할 때 그림을 잘 그리는 순서대로 뽑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상대적으로 재능도 중요하지만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잘하는 것이 미술인 경우도 고려한다"며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진로를 설정해 자립을 도와주는 것이 목표다”고 전했다.
디자인스쿨 수업장면.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강사들이 잠재능력개발과 직업인소양능력배양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오티스타

◇ 기업이 먼저 채용 요청하는 이유 "장애를 재능으로"

디자인스쿨을 거친 자폐성 장애 학생, 성인은 지금까지 모두 50여 명이다. 이 가운데 7명이 오티스타에 정식 채용됐다. 조상협씨(29)는 2년 동안 SK플래닛 사회공헌팀에서 일했다. 일 주일에 한 번 회사에 출근해 회의도 참석하고 구내식당에서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밥도 먹으며 사회성을 길렀다. 나머지 4일은 오티스타에 파견 형식으로 출근해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과정을 무사히 끝낸 후 지금은 에이랜드라는 디자인전문회사에 취업했다.

에이랜드에는 조씨를 포함해 2명의 자폐인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에이랜드측은 오티스타를 방문했다가 디자이너들의 솜씨에 반해 먼저 채용의사를 밝혔다. 박혜성 이사는 “이들이 취업한 지 약 8개월이 됐다”며 “최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더 채용할 인원이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오티스타는 디자이너들이 사무실과 외부업체를 오가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직무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동안 장애인의 재능을 기반으로 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통합할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며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창업동기를 밝혔다. 그는 4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그 말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자기계발의 날에 오티스타 디자이너들과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박혜성이사(오른쪽) 사진제공=오티스타

◇ 올해 매출 2배 성장세 "오롯이 디자인으로 승부 걸겠다"

서울 신촌 이화여대정문 앞 골목길 이화스타트업 52번가에 가면 오티스타의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갤러리 스토어가 있다. 우산·가방·머그잔·티셔츠·문구류 등 총 20개 종류의 제품이 구비돼있다. 모두 자폐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다. 오티스타 제품은 교보문고 핫트랙스 광화문점과 서울대마켓인유·양천구 행복나눔가게 나누리 등 7곳에 입점해 있다.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 중이다.

오티스타 디자이너들이 만든 텀블러. 매장에는 우산,가방,머그잔,문구류등 20여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오티스타

이 가운데 가장 큰 매출을 올린 것은 휴대폰케이스 디자인이다. 삼성전자와 협업해 갤럭시 S7과 S7엣지의 휴대폰케이스 7종을 디자인했으며 공식 대리점에 배포됐다. 올 한 해 동안 롯데그룹이 발행하는 사보의 표지 디자인도 맡았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오티스타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이미 지난 2~3년 동안의 연 매출 수준을 넘어섰다. 이 교수는 올해 약 2배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오티스타디자이너들이 삼성전자와 협업해 제작한 갤럭시S7 휴대폰케이스 사진제공=오티스타

그는 '과연 장애라는 글자를 지우고 오롯이 디자인만으로 승부를 걸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해외전람회 출품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뉴욕에서 열린 국제문구박람회에 5개 한국 기업 중 하나로 참여했다. 이 교수는 “부스를 찾은 해외바이어들이 자폐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모습에 뿌듯했다”고 자랑했다.

지난5월 뉴욕에서 열린 국제문구박람회에 출품된 오티스타제품들 사진제공=오티스타

◇ 자폐인 자립 돕고 소외층에 물품 지원 ‘두번 나눔 프로젝트

오티스타의 수익금은 고스란히 자폐인의 자립을 돕는 데 쓰인다. 이 교수는 “주변에서 기껏해야 몇천 원에서 1만 원 하는 오티스타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랴”는 질문을 받고 새로운 기부아이디어를 냈다. 이른바 두 번 나눔 프로젝트이다.

오티스타는 후원자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자폐인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구매해 그들이 지정한 기관에 오티스타의 물건을 보내준다. 수혜받은 기관에서는 그 물품에 대한 금액만큼 기부영수증을 발행해준다. 기부자는 한 번의 기부로 자폐인들에 대한 자립을 돕고 도움이 절실한 기관에 필요한 물품을 보낼 수 있어 두 번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오티스타를 지지하는 정기 후원자는 120여 명쯤 된다. 매달 1만 원에서 20만 원씩 후원하는 개인이 있고 일시불로 100만여 원 씩 후원하는 단체도 있다. 이 교수는 "개인 후원금이 가장 많다"며 "기부처는 기부 영수증을 발행할 수 있는 기관들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곳이다"고 덧붙였다.

두 번 나눔프로젝트로 캄보디아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오티스타 디자이너가 제작한 티셔츠가 전달됐다. 사진제공=오티스타

한 신랑신부는 결혼축의금으로 학용품을 필요로 하는 새터민학생들과 비영리시설 어린이에게 오티스타가 만든 알록달록한 공책을 선물했다. 2013년에는 캄보디아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티셔츠가 전달됐고 보육원과 미혼모시설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나눔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티스타가 유명세를 타면서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현재의 인력과 재원으로 확장은 무리다. 그래서 이 교수의 고민이 깊다. 그는 “장애를 가졌기에 한 번도 채용에 대한 기대를 않고 있다가 꼬박꼬박 월급도 받아오는 아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가정이 많다”며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폐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오티스타는 하나의 희망이다. 그들은 비록 자신의 자녀가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오티스타가 자폐인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국내자폐성장애인수는 9500명이다. 매년 6.6%씩 증가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폐인들 가운데는 지적장애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은 얼마든지 직장생활이 가능한데도 여건상 이들을 품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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