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전 오늘… 아인슈타인 등 "핵무기 폐기" 외치다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 2016.07.09 05:53

[역사 속 오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발표… 퍼그워시 회의 이끌어내

버트런드 러셀이 1955년 7월 9일 런던 칵스톤 홀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퍼그워시 회의 홈페이지
친구사이였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이론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52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 경쟁에 대해 문제를 공감했다.

1954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당시 베트남과 전쟁을 하고 있던 프랑스에 수소폭탄을 공급할 용의를 내비치고, 장제스에게도 같은 제안을 하면서 핵에 대한 위기는 확산됐다.

핵에 대한 공포를 정확히 예상했던 지식인들은 이 같은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었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61년 전 오늘(1955년 7월 9일) 러셀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런던 칵스톤 홀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을 발표한다.

러셀이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고, 아인슈타인을 시작으로 조지프 로트블래트·막스 보른·프레데릭 졸리오 퀴리·히데키 유카와 등 9명이 서명을 통해 동의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학문적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지식인이었다.

선언문에는 "향후 세계대전이 일어날 경우 틀림없이 핵무기가 사용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한 후 세계의 모든 정부는 자국의 목적을 위해 세계대전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각하고, 모든 분쟁의 해결 방안으로서 평화적 방법을 강구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지금 당장 전면적 군비 축소와 그것의 일환으로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협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했다. 이 문건은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의 정부 지도자들에게 전달됐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의 효과는 2년 뒤에 나타났다. 1957년 7월 10개국 22명의 과학자들이 캐나다 퍼그워시에서 모임을 가진 것. 이들 과학자들은 방사능 낙진의 위험과 핵실험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고하고, 2년 전 선언과 마찬가지로 각국 정부에 핵 감축과 군비제한을 요청했다. 국제적인 반핵평화단체 '퍼그워시 회의'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퍼그워시 회의는 매년 1~2회씩 회의를 개최해 반전반핵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퍼그워시 회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을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95년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로트블래트와 함게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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