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은 '갑질', 지도부는 '법안 거래'…계속되는 후진 정치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 2016.07.04 05:00

[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 <4>-②

5일 오후 서울 중구 종로구 청계천 일대에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물이 걸려 있다.

#. 4년간 민의를 대변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자들은 올해 초 후보등록을 앞두고 일대 혼란을 겪었다. 국회가 법정시한 내 선거구 획정에 실패하면서다. 여당은 선거구 획정에 쟁점법안을 연계시켰고, 야당은 청와대가 개입했다며 의혹을 키웠다.
일부 예비후보는 자신이 출마하려는 선거구조차 모른 채 후보등록을 해야했다. 당사자들도 모르는 선거구를 유권자들이 제대로 파악했을리 없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이라는 급한 불부터 끄는 사이 민의가 왜곡된 선거제도 개편도 뒷전으로 밀렸다.

#. 2014년 말 여야는 11년만에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가 합의하지 않을 경우 정부안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여야를 협상을 압박하는 카드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서민·흡연가들이 반대해온 담뱃값 2000원 인상안 처리에 합의했다. 담뱃값 인상에 반대해온 야당은 누리과정 순증액 국고 우회지원을 약속받고 수용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본회의장 내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법안처리등에서 우리 국회는 여전히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상임위에서 논의해 힘겹게 조율한 법안이 지도부에 가서 정쟁거리로 전락하기 일쑤고 다른 법안과 연계돼 처리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전반기 기준 제13대 국회 이후 최단기간 원구성에 성공한만큼 20대 국회에선 후진적 정치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법률에 반영되지 않은채 폐기된 법안은 1만190건이다. 법률로 반영(대안반영 포함)된 7429건에 비해 2500건 이상 많다. 폐기법안 중에는 법제사법위원회 904건도 포함돼있다.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버려진 법안이 상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 19대 국회에선 '빅딜설'이 난무했다.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비공개 회의를 하면 '협상을 빙자한 거래'가 시작됐다는 의미였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정무위원회 소관 80여개 법안은 논의가 끝난 상태였지만 여야 지도부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관광진흥법'과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이하 대리점법)'을 연계하기로 합의하면서 꼬여버렸다.


야당의원들은 자신들이 요구해온 대리점법이 관광진흥법과 묶이면서 새로운 협상 법안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고, 여당의원들은 상임위 마무리가 끝나 추가로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여파로 이견이 없었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과 대부업법 등 민생법안까지 처리가 지연되면서 일부 법안들은 일몰 시한까지 넘겨야 했다.

정치권의 후진적 행태는 최근 친인척 보좌진 채용에서 표면화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여야 가릴 것 없이 드러난 의원만 10명이 넘는다. 이전 국회까지 파헤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게 중론이다. 친인척 채용은 인건비등 돈문제로 이어진다. 보좌진의 세비를 걷어 지역사무소 운영자금으로 전용하거나, 추가로 채용한 보좌진의 임금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후원금 앵벌이'도 심각하다. '성과에 따라 보좌진의 밥줄이 왔다갔다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보좌진을 사적 업무에 활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밤·낮·주말 가릴 것 없이 불러내 집안일을 시킨다거나 자녀의 가정교사나 배우자의 운전기사로 이용하기도 한다.

여야는 20대 국회 들어 경쟁적으로 정치개혁에 힘을 싣는다. 새누리당은 '불체포특권 포기'와 '세비동결'을, 더민주는 '체포동의안 72시간 규정 폐지'와 '회의불참시 회의수당 미지급'을, 국민의당은 '국회의원 국민파면제'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매번 정치개혁을 외쳤던 정치권이 총선 이후 슬그머니 꼬리를 숨겼던 전례로 볼 때 약속이 지켜질 지 미지수다.

2005년 열린우리당 시절 법원이 체포동의 요청시 72시간이내로 표결하도록 국회법 26조를 개정하는 등 개혁적으로 입법했지만 규정을 악용해 '제식구 감싸기'로 활용해왔다.

이현출 건국대 겸임교수 겸 전 한국정당학회장은 "입법시 불체포특권 남용을 금지하기 위해 강행규정으로 만들었는데 실제 적용할때는 처리하지 않고 폐기하는 방식으로 면죄부를 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근 비대위의 불체포특권·면책특권 버리기나 윤리규정 강화 등 규정을 잘 만드는 것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의원들의 의식전환"이라며 "국회의원 스스로가 의원직을 권력으로 보기보다 봉사·서비스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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