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오늘… '동양의 진주' 홍콩, 영국을 떠나다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 2016.07.01 06:00

[역사 속 오늘] 영국, 중국에 '홍콩' 주권 반환

홍콩 전경
홍콩 일대는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몇 차례의 불평등조약 끝에 영국의 조차지(租借地·협정에 의해 유상 혹은 무상으로 빌려주는 영토)가 된다. 영국은 홍콩 빅토리아항을 교두보로 아시아 대륙을 공략하면서 홍콩에 영국식 정치·문화·경제 시스템을 이식한다.

공산국가 수립 후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었던 중국도 외화획득 창구로 홍콩을 활용하면서 무리한 탈환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에 홍콩은 경제적 발전과 함께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동양의 진주'로 거듭난다.

그러다 홍콩 내 영국계 자본들이 1997년으로 합의됐던 신계 지역 조차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영국 정부에 중국과의 홍콩의 장래에 대한 협상을 촉구하기 시작한다. 결국 1982년 9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중국과 영국 간 공식 협상이 막을 연다.

협상 끝에 대처 총리와 자오쯔양 중국 총리는 1984년 12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협정에 정식 서명을 하면서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날 맺은 협정엔 영국이 홍콩을 조차만기에 따라 중국에 돌려주고, 대신 중국은 홍콩을 특별행정구로 지정해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해주기로 한 '일국양제'의 내용이 담긴다.

하지만 협정 이후에도 영국이 민주화 정치개혁을 시도하면서 양국 간 홍콩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와 인권·복지 문제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다 19년 전 오늘(1997년 7월 1일) 난제들을 남겨둔 채 양국은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홍콩 주권 반환식을 진행했다.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이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했다"고 선포했고,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가 정식으로 성립됐다. 과거 홍콩 총독부의 기구와 인원은 특별행정구 정부에 편입됐다. 이날 1만2000명이 넘는 기자단이 현장을 찾아 소식을 알렸다.

반환식을 마친 뒤 영국 대표단은 식장을 빠져나와 퀸즈피어에서 왕실 전용요트 브리타니아호를 타고 빅토리아항을 한바퀴 돈 뒤 156년에 걸친 홍콩통치를 역사의 뒤안길로 남기고 떠난다. 이 순간을 지켜본 많은 홍콩인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실험적인 홍콩의 일국양제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주권이양 이후 홍콩에선 언론정책, 홍콩판 국가보안법 입법, 입법회 직선제 도입 배제 등을 둘러싸고 정정불안이 이어졌다. 홍콩시민들은 그때마다 거리로 나섰다. 여전히 매년 7월 1일 홍콩 도심에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과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달 4일 홍콩 참샤추이에서 열린 '천안문사태 27주년'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홍콩 독립'이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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