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에 시달리다 급성 백혈병에 걸려 숨진 판사에 대해 대법원은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8일 2013년 숨진 이우재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8·연수원 20기)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취소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과 과로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는 급성 백혈병 진단 후 4일 만에 사망했다"며 "급성 백혈병 환자의 일반적인 생존기간을 고려할 때 이 전 부장판사는 단기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직접 사인이 된 패혈증의 원인이 급성 백혈병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진료기록 감정의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감염병이 발병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2013년 1월6일 새벽 자택에서 심한 다리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이송됐다. 의사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함께 패혈증 진단을 내렸다. 이 전 부장판사는 즉시 입원돼 치료를 받았지만 같은 달 10일 패혈성 쇼크로 숨졌다.
이 전 부장판사는 평일 대부분 오전 7~8시 전 출근해 오후 5~7시까지 근무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재판 업무와 공식적인 집필 업무를 수행했다. 평소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던 이 전 부장판사는 민사집행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연구에도 몰두했다.
특히 이 전 부장판사가 숨지기 전 3개월 동안 심리한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같은 법원의 다른 합의재판부들보다 많은 사건을 처리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부장판사의 유족은 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공단은 "과로와 백혈병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유족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이 전 부장판사가 숨진 것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사망 당시 이 전 부장판사는 백혈병에 패혈증과 감염병이 발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은 무엇이 먼저 발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전 부장판사의 면역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견을 제출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가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 요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가 수행한 업무량은 그 자체로 많을 뿐더러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했을 것"이라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감염병을 유발했거나 급속히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단이 이 전 부장판사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내린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은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단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로나 스트레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학 소견"이라며 "이들이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이 전 부장판사는 숨지기 전 2주 동안 2차례 국내외 여행을 다녀오고 그 사이 재판을 진행하는 등 업무를 수행했다"며 "이 전 판사의 업무가 상당한 과로나 스트레스를 유발했거나 백혈병·감염병 악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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