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오늘…영호남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 2016.06.27 06:00

[역사 속 오늘] 전 구간 시멘트 포장 '백색의 하이웨이' 별칭…지난해 왕복 4차선 확장

전국 고속도로 중 유일하게 중앙분리대가 없는 편도 1차선 광주~대구간 88고속도로./사진=뉴시스

오래전부터 영남과 호남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한민족이지만 소백산맥이라는 험준한 산이 두 지역을 가로막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억양, 무의미한 갈등은 심리적 거리감을 부추겼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전국이 1일 생활권에 진입한 후에도 영호남은 여전히 막혀있었다. 오랜세월 지형적으로 가로막힌 이 지역 주민들간의 이질감은 점점 더 커졌고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해였다.

마침내 1984년 6월27일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가 뚫렸다. 1981년 10월 착공에 돌입한지 33개월만이었다. 소맥산맥을 관통하는 이 고속도로는 대구~광주간 500리(약 200km)를 기존 5시간대에서 2시간30분으로 단축시켰다.

당시 정부는 이 고속도로가 두 지역의 화합을 위한 새 길이 되고 서로 충격과 자극을 통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같은 의미로 이날 준공식이 개최된 지리산 휴게소에선 영호남 처녀 총각 8쌍의 합동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이 고속도로의 이름은 올림픽유치를 기념해 '88올림픽고속도로'라고 붙여졌다. 원칙적으로 도로 이름은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서쪽에서 동쪽, 남쪽에서 북쪽 지명 등을 따서 붙여지는데 이 고속도로는 지명을 사용하지 않은 첫번째 고속도로로 기록된다.

당초 이 고속도로도 소백고속도로, 지리산고속도로, 동서고속도로 등의 의견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88올림픽 고속도로라는 아이디어를 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88이라는 어감이 팔팔뛴다는 뜻을 연상시켜 생동감 있다는 뜻도 있었다.

이 고속도로 공사에는 연 인원 650만명이 동원됐고 시멘트 113만8000부대, 철근 3만7584톤, 강재 6351톤이 들어갔는데 모두 국산 자재와 순수 우리 기술진, 공사비 전액 내자로 건설됐다. 이 점은 1980년대만 해도 큰 의의가 있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전 구간이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88올림픽고속도로는 '백색의 하이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당시만해도 시멘트 도로는 수명이 최소 40년 이상으로 아스팔트보다 5배 이상 길어 경제적이라는 분석이었다. 평탄성도 좋아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컵을 놓아도 넘치지 않는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시멘트포장에 대한 경험은 부족했고 6개월이나 앞당겨 공사를 끝낸 것도 문제였다. 88올림픽고속도로는 개통 1년만에 평균 100~200m 간격으로 노면이 패여 잇단 보수공사로 누더기 도로로 변했다. 타이어 마모도도 아스팔트 도로에 비해 20%나 높았다.

경사도가 너무 높고 절개지에 대한 안전시설이 미비해 장마철 산사태나 낙석위험도 높았다.

더욱이 왕복 2차로로 개통됐지만 도로 폭이 좁고 급커브 구간이 많은데다 중앙분리대는 설치되지 않았으며 제한속도는 시속 80km에 불과해 운전자들의 피로감은 높았다. 이 도로에서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잇따랐고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을 떠안기도 했다.

영호남 화합의 장이라는 의미도 무색했다. 영호남 두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많지 않았고 지역간 균형개발도 되지 않았던 탓에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통행량이 크게 뒤떨어졌다.

결국 정부는 2008년 88올림픽고속도로 전 구간을 4차로로 확장하고 직선화하는 공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88올림픽고속도로는 지난해 12월22일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새 이름으로 재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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