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미술을 돈벌이에 이용하지만…"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 2016.06.24 07:30

[이코 인터뷰]'쌈지체' 이진경 화가…위작·대작이 판치는 미술계에서 한 예술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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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화가/사진=김태형 이코노미스트
“미술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치유입니다.”

‘쌈지길’ 아트 디렉터이며 일명 ‘쌈지체’로 알려진 글자체를 만든 이진경 화가(49)는 “예술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림이 ‘아름다움’과 ‘치유’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최근의 위작·대작 사건은 미술품이 ‘진열대 위의 상품’으로 취급돼 나타난 결과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서호미술관에서 7월12일까지 전시회를 개최 중인 그녀는 대학 졸업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중견 서양화가다.

그동안 금호미술관, 인더루프, 테이트아웃드로잉 등에서 20여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일본 도쿄현대미술관, 런던 아시아하우스,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여러 번 단체전을 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소통하는 미술을 주제로 사람들이 서로 공명하는 관계를 맺길 바라면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나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이롭게 하고자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이진경 화가가 대학 졸업 후 작품 활동을 시작한지는 20년이 넘었다. 이 화가는 2002년 포천의 작업장을 화재로 잃은 후 홍천에 새로 터를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경제적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감이 떨어지거나 생활비가 필요하면 여러가지 일을 병행한다. 달력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고 삽화나 글씨 작업을 하거나 주변 지인들의 간판을 그려주기도 한다.

◇ 대안공간 루프에서 시작된 소통의 미술

미술이 좋아 시작했던 작품 활동은 1998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영양탕 팝니다'란 전시회를 열면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누군가 그림을 주문하면 그려주는 전시회를 열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당시 랜드로버 한 켤레 값인 8만원 내외의 가격이 그녀가 책정한 그림값이다.

2012년도에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당신이 좋아요'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삶에 생기를 불러 일으킨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백을 건네는 전시회였다. 그림을 선물한 사람들과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진열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다. 진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순응한다면 그것은 이미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필드(그림시장)에 나가 보지 않고 말하지 마라”란 충고대로 그녀는 잠시 외도를 고민했지만 자본시장 논리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하고 미술의 존재가치를 찾기로 결심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노는 개미 이야기를 예로 들며 미술의 가치를 강조했다. “일하는 개미가 힘들고 지칠 때 그동안 놀던 개미가 그 자리를 대신해 일한다”며 그림은 삶이 힘들고 각박할 때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나조차 치유받는 느낌이다”고 한다.

이진경 화가의 '쌈지체'/사진제공=이진경 화가
◇ 쌈지와의 인연 그리고 눈 뜬 세상

그녀는 “세상을 보다 다양하게 알게 된 것은 2002년 쌈지길 아트디렉터 일을 하면서부터다”라고 말한다.


쌈지 천호균 전 대표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녀는 천 대표를 알게 되면서 나만을 위한 그림에서 세상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1990년대 말부터 천 대표는 젊은 작가의 미술, 독립영화, 인디밴드 등 크고 작은 일을 후원했다. 쌈지의 경영권이 넘어가자 ‘쌈지농부’와 ‘어린농부’라는 기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파주 헤이리에서 ‘농사가 예술이다’란 이름으로 각 지역농부를 소개하고 ‘농부로부터’란 친환경 농산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은 인디밴드 데뷔공연의 장이 되기도 했다.

“쌈지길 로고가 그림이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당시 천대표의 주문으로 지금의 쌈지길 대표이미지가 탄생했다.

그녀가 쌈지길 아트디렉터로서 한 일은 한국적이면서도 현대라는 시간을 담고 사람 냄새나는 서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영어가 들어가야 멋진 것’이라는 서구중심의 주류 미감을 뒤로 하고 한국적이고 평범한 것의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모든 공간에 한글로 이름을 짓고 음양오행에 맞춰 브랜드와 건물 전체를 구성했다.

비싼 땅인데도 큰 마당을 가운데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 행사와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만들어 지는 공간이 되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쌈지길은 옛것과 새것이 만나는 인사동 골목길을 연장한 특별한 공간으로 탄생되어 '인사동 안의 인사동'이라 불리게 됐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고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쌈지길의 그림, 글씨 등이 모두 이진경 화가의 작품으로 남아있어 처음의 취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진경 화가/사진제공=이진경 화가
◇ 위작·대작이 미술계의 관행?

그녀는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위작·대작 논란은 진열대에 올라간 미술품만 팔리는 현실이 낳은 결과라고 말한다. 일단 진열된 제품은 자연스럽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게 된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결국 위작하거나 대작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열대로 올라가는 좁은 길은 힘이 있는 유통업체나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 작가와 소비자의 주체적인 선택권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이런 미술계의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품이 백화점 뿐 아니라 대형마트, 편의점, 공동구매 등 다양한 유통경로에서 팔리듯이 그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가와 소비자가 연결돼야 한다”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피력했다.

또한 그녀는 ‘조영남 대작사건’에서 마치 대작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식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어떻게 대작이 관행인가요?” 그녀는 작업할 때 공동 작업은 정확히 누구와 했는지 이름을 밝히고 물리적 도움을 받을 때는 서로 적절한 상식선을 지킨다고 했다.

그녀는 “미술작업이 경제적 논리로만 이뤄진다면 차라리 투잡을 하거나 가난을 벗 삼아 사는 것이 최선이다”라며 미술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는 미술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할 때 타협을 거부하고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 않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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