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서 각방 쓰는 결혼생활'…"그만 끝내고 싶어요"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 2016.06.22 08:33

[the L][조혜정 사랑과 전쟁] "협의이혼보다 '조정이혼절차' 통해 결혼생활 정리할 수 있어"

사진 / pixabay
Q.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너무나 고민돼 질문을 드려요. 제 나이는 올해 서른 일곱. 3년 전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첫 만남에서 남편은 무난한 사람이란 인상을 줬고 직장과 학벌도 그만하면 괜찮다 싶었어요.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지만, 작은 집을 한 채 갖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저를 좋다고 하니까 세 번 만나고 결혼 결정을 하고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더 고르다가 혼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부모님과 가족의 압력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어요. 살다보면 정이 생기겠거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신혼여행을 가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은 첫날밤에도 부부관계를 하려들지 않았고, 저와는 얘기를 거의 안 했어요. 관광을 하러 다니는 중에도 친구들과 계속 카톡을 하고 방에 돌아와서는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저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하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문제는 그런 남편의 태도가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결혼 후 지금까지 부부관계를 한 횟수가 열 번이 안되는 거 같아요. 제가 아이를 가지려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러려면 왜 결혼했냐고 했더니 아이가 꼭 있어야 사는 건 아니지 않냐고 하는 거예요. 결혼 후 1년 좀 넘었을 때나온 얘기예요.

그 후 남편이 작은 방에 가서 자기 시작해 지금까지 각방을 쓰면서 살고 있어요. 남편은 회사일과 모임을 핑계로 매일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등산, 사이클 등 취미생활을 하러 나가버려요. 처음에는 제가 아침을 챙겨줬지만 입맛이 없다고 안 먹어서 그것도 그만뒀고 저녁을 같이 먹은 적도 거의 없어요. 어쩌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TV를 보고 게임하면서 보내지 저와는 말 한마디 안해요. 처음에는 저도 화를 냈는데, 남편은 "바꾸겠다"는 말만 하고 하나도 바뀌지 않아 이제는 화낼 기운도 없어요.

저도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사람을 만나고 취미활동도 하면서 나름 바쁘게 살고는 있는데 요즘은 가끔씩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회의가 들고 마음이 공허해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럽고요.

그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이혼을 하는 게 맞다 싶어요. 얼마 전 제가 이혼하자 했더니 남편은 자기 집안에 이혼한 사람은 없다며 이혼은 절대 안 한다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남자가 나이들면 바뀐다고 저보고 좀 더 기다려보라고 하세요. 하지만 저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혼을 해야 재혼해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꼭 아이를 낳고 싶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이혼을 하겠다는 저의 결정이 맞는 걸까요? 그리고 빨리 이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선생님은 결혼이 필요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신 거예요. 선생님 남편과 같은 사람은 어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세대에는 별로 없었던 새로운 인간형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답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가족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인간관계에 매우 서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애정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인간관계, 예컨대 직장, 사교모임, 선후배 등의 관계에서는 잘 처신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활을 배우자와 전면적으로 나눠야 하는 결혼생활에 들어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자기 배우자와 생활을 공유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그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집에 가면 배우자와 말을 안 하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고 주말에도 집 밖으로 나가버리는 양상을 보입니다. 제3자가 보기엔 사교성 좋고 활동적이며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내면에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결혼한 배우자들은 결혼생활이 무의미하고 공허해서 힘들어하게 됩니다.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아이 낳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아이를 낳아도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낳아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애정중추'에 이상이 있거나 마비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제는 유전, 기질, 가족사, 개인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오랜 세월 상호 작용해 개인의 성향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런 성향을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3년간 기다린 끝에 이혼하기로 한 선생님의 결론이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년이면 한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거든요. 좀 더 참아보라는 부모님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사정을 잘 모르는 제3자의 생각일 뿐이니까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빠른 정리를 원한다면 협의이혼보다 가정법원의 조정이혼 절차를 고려하길 바랍니다. 조정이혼은 가정법원에 조정이혼신청서를 접수한 후 지정된 조정기일에 양 당사자가 출석해 가정법원의 조정위원들과 함께 이혼 여부·조건을 의논해 당사자 간 합의를 시켜보는 제도입니다. 합의가 이뤄지면 그 내용을 조정조서에 기재하는데 이 조서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보통 조정신청서 접수 후 두어 달 안에 절차가 마무리돼 신속하고 양 당사자 간 합의를 목표로 해 이혼소송과 같이 극한적인 대립을 하지 않으며 법원이라는 권위있는 기관이 중재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부부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위자료와 재산분할, 양육권 등에서 대립이 없는데 한쪽 당사자가 별다른 이유 없이 혹은 체면상의 이유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조정이혼으로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신속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조정이혼으로 희망이 없는 현재의 혼인관계는 정리하고 결혼관이 같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길 빕니다.

조혜정 변호사는 1967년 태어나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언론에 칼럼 기고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협 인증 가사·이혼 전문변호사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웹페이지 바로가기

베스트 클릭

  1. 1 "번개탄 검색"…'선우은숙과 이혼' 유영재, 정신병원 긴급 입원
  2. 2 유영재 정신병원 입원에 선우은숙 '황당'…"법적 절차 그대로 진행"
  3. 3 법원장을 변호사로…조형기, 사체유기에도 '집행유예 감형' 비결
  4. 4 '개저씨' 취급 방시혁 덕에... 민희진 최소 700억 돈방석
  5. 5 "통장 사진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첫출근 전에 잘린 직원…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