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은 정말 본처를 독살했을까?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 2016.06.18 03:11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2 - 정난정 : 신분의 벽 넘으려다 희대의 악녀로

윤원형의 첩 정난정이 드라마 '옥중화'에서 악역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1년에 방영된 '여인천하'에서도 범상치 않은 악의 기운을 뿜었지만 이번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팜므파탈의 치명적 매력으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휘어잡는가 하면, 권모술수에 능하여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고 눈 밖에 난 사람은 거리낌없이 죽인다.

정난정은 양반 아버지와 관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은 본처의 자식(적자)과 첩실 소생(서자)을 엄격히 구분하고 차별했다. 게다가 어머니가 양인도 아닌 종의 신분인 탓에 그녀 또한 천대받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난정은 신분의 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여인의 삶을 살펴보면 오히려 신분질서에 도전하는 '발칙한' 행적이 두드러진다.

정난정이 기생이 되어 윤원형의 첩으로 들어앉은 것은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일단 발판을 마련하자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하였다. 정난정은 시전상인들과 결탁해 재산을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는데 독점판매, 폭리 등 부정축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업은 권세를 등에 업고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덕분에 정난정은 남편 윤원형뿐만 아니라 시누이 문정왕후의 신임까지 얻었다. 권력의 기반인 외척세력을 키우려면 큰돈이 들었을 텐데 이 골치아픈 문제를 첩이 해결해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그녀는 차츰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며 문정왕후의 참모 노릇을 하게 되었다. 문정왕후가 승려 보우를 등용하여 불교를 부흥시킬 때 산파역을 한 이도 정난정이었다.

1551년 윤원형의 본부인 김씨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공이 참작되었을 것이다. 2년 후에는 궁궐 밖 여인에게 최고의 영예였던 정경부인의 직첩을 받기도 했다. 천첩이 본처 자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공주에 준하는 지위를 얻게 된 셈이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시대 신분질서에 비춰볼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신분의 벽을 넘어 부귀영화를 손에 넣은 정난정은 그러나 자신이 천대받던 시절을 잊지 않았다. 권신 윤원형이 적자와 서자의 차별을 철폐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무래도 그녀의 입김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신분질서가 흔들리자 외척세력의 위세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사림이 조용히 칼을 갈기 시작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외척세력이 밀려나고 사림의 발언권이 커졌다. 유자로서 신분질서를 중시하는 그들이 정난정을 가만둘 리 없었다. 사헌부와 사간원 등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그녀의 정경부인 직첩을 회수하고 본처와 첩실의 분별을 엄중히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정난정을 잘 아는 명종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법을 관장하는 형조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이미 죽은 본부인 김씨의 모친이 정난정을 고소했다는 것이다. 소장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쫓겨난 딸이 굶주려서 정난정에게 먹을 것을 구했는데 정난정이 여종 구슬을 시켜 독이 든 음식을 내주는 바람에 죽었다"는 것이다. 이는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든 뜨거운 스캔들이었다. 세상에 첩실이 본처를 독살하다니….

의금부에 끌려간 여종 구슬 등은 처참한 고문을 받다가 정난정이 독살을 사주했다는 진술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신하들은 "사람의 도리를 무너뜨리고 나라의 기강을 문란케 한 중대범죄"라며 '진범' 정난정을 잡아들이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명종은 고개를 저었다. "정난정이 쫓겨난 본부인을 구태여 죽일 이유가 없고, (김씨의 모친이) 원한을 품고 지어냈을 수도 있다"는 반론이었다.

마녀사냥에 몰린 정난정은 얼마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남편 윤원형도 곧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정난정의 죽음을 알린 실록 기사(1565년 11월 13일자)는 본처 독살설을 기정사실로 못 박는 한편 집에 드나들던 의원과의 성적 추문까지 보탰다. 역사기록의 붓을 쥔 사림은 신분질서를 어지럽힌 이 여인을 지저분한 악녀로 낙인찍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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