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은 STX조선이 지난달 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최근 8000억원의 추가 충당금을 적립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달 중에 다른 시중은행들처럼 대우조선해양 여신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춘다면 약 3000억원 정도의 충당금이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산은은 올 2분기에도 8000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원 이상의 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산은의 대손상각비는 2조8100억원으로 한해전 1조6567억원에서 1조원 이상 늘었다. 산은이 지난해에 1조8951억원의 손실을 내며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산은은 올 1분기말 기준 고정이하여신비율(전체 여신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7%로 지난해 1분기 말 2.66% 대비 크게 뛰어오르는 등 건전성 지표도 빠르게 악화됐다.
충당금 부담과 건전성 지표 악화는 산은이 대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해온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란 주장도 제기된다. 한계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지적된다. 우선 워크아웃을 주도해온 산은이 정·관계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책은행이란 점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 지원체계 모색' 토론회에서 "산은이 나서 급한 불을 끄고 급박한 상황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데 동의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지속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산은이 구조조정에서 빠지는 방안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근본적으로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도 잃어버린 20년 초기엔 주채권은행이 주도하는 워크아웃이 구조조정의 기본 틀이었지만 은행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주채권은행이 아닌 변호사·회계사 등 제3의 중립적 전문가들이 워크아웃을 주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워크아웃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지만 채무구조 다변화 등으로 주채권은행이 주도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어 워크아웃을 주도하는 주체가 중립적 전문가 등으로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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