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푸르지오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38)는 택시를 탈 때마다 택시기사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는다. 대우드림타운은 2006년 영등포푸르지오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등포 지리에 밝지 않은 택시기사들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아직까지 옛 명칭이 익숙한 것이다.
아파트 인근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 당시 아파트 개명이 열풍이었다. 역세권에 위치한 아파트로 광고효과를 노리려는 건설업체와 집값 상승을 원하는 입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러나 기대심리만큼 아파트값 상승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개명(명칭변경)은 e-편한세상, 래미안 등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과거 아파트명은 대우드림타운, 삼성 보라매아파트처럼 '건설업체+지역명' 형태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건설업계 불황이 거세지면서 단지 '집을 잘 짓는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없었다. 이에 건설업체들은 고객 요구에 맞춘 다양한 콘셉트의 아파트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브랜드 아파트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2000년대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소비자들도 이들 아파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회사원 이모씨(36)는 "아무래도 남들도 다 아는 대형건설업체 브랜드에 눈길이 간다"며 "가격은 비싸지만 입지조건, 집값 상승 등을 기대할 수 있고 나중에 매도도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 입주민들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브랜드를 넣어 낙후된 이미지를 개선, 집값 상승을 기대하면서 개명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삼성아파트는 '래미안', 대우아파트는 '푸르지오', 현대아파트는 '힐스테이트'로 이름을 바꾸는 식이다.
잠원동 '래미안잠원'은 6월 입주를 앞두고 '래미안신반포팰리스'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 부촌인 '반포' 이미지와 '궁전'을 뜻하는 팰리스(palace)를 결합해 지은 이름이다.
서울 아현동의 '아현 래미안 푸르지오'는 최근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로 이름을 바꿨다. 중산층이 선호하는 동네인 '마포'를 넣은 것이다. 서울 신정동 '목동힐스테이트'도 행정구역은 목동이 아니지만 목동생활권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단지명에 목동을 넣었다.
실제 행정구역과 아파트 명칭상 지역이 다른 데 대해 양천구청 관계자는 "아파트 명칭 변경은 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며 "판례에는 행정구역 명칭에 대한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다. 다만 인근 아파트 명칭에 혼동을 주는 등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아파트 개명 현상에 대해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 팀장은 "브랜드(이름) 하나로 프리미엄이 형성되다 보니 단지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실제 들어서는 지역이 아닌 인근 행정구역명을 붙여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광교신도시 옆에 들어서는 단지에 광교를 붙여 후광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는 이어 "아파트 개명 작업만으로 매매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여러 가지 요인(입지, 교육 등)이 합쳐졌을 때 가격이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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