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회사, 외부감사·공시 회피용으로 전락하나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 2016.06.08 07:30

[같은생각 다른느낌]회계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외국계 유한회사

편집자주 | 색다른 시각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외국계 글로벌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해 유한회사로 운영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2006년), 애플코리아(2009년), 루이뷔통코리아(2012년) 등이 외감대상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으며 최근 들어 알리바바코리아(2014년)와 테슬라코리아(2015년) 등이 유한회사로 설립됐다.

이런 배경에는 유한회사가 외부감사와 공시 의무가 없는 데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규제가 대폭 완화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2014년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유한회사 수는 상법 개정전인 2010년 1만6998개사에서 2013년 2만1336개사로 약 4300여개 증가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설립과 운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유한회사가 출자자의 이익극대화만 추구하고 이해관계자에게 회계정보를 알리거나 사회적 책임을 지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대표 기업인 옥시는 책임을 회피하고 경영실적을 숨기려는 의도로 2011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회계감독 사각지대에 속하던 유한회사에 대한 규율 마련을 위해 2014년부터 유한회사의 ‘외부감사 의무화’와 ‘감사보고서 공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 3월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는 금융위원회가 제출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제동을 걸었다. 이 개정안에는 유한회사에 대한 외부감사와 공시 의무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규개위는 유한회사의 외부감사 의무화는 추진하되 법률에 사원 수 등에 따른 면제 기준을 구체화해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하고 감사보고서 공시는 면제토록 개선권고했다.

유한회사의 감사보고서가 공시될 경우 원가정보 등 영업비밀이 공개되고 대기업 등과 거래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의견과 상법을 개정해 유한회사의 규제를 완화했는데 ‘외부감사법’에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여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상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견해 등이 금융위 개정안에 제동을 건 이유였다.

그러나 유한회사는 단독 또는 소수로 설립하는 경우가 많아 사원 수에 따라 면제를 하면 실효성이 떨어지며 외부감사를 하고도 공시를 하지 않는다면 이해관계인은 기업의 회계정보를 알기 힘들다.

또한 회계정보 공개로 우려되는 문제는 주식회사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데 굳이 유한회사의 감사보고서 공시를 면제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외부감사를 회피하고 공시의무를 받지 않기 위해 유한회사로 설립하는 경우까지 보호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투명성 확보라는 상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유한회사란 중소규모의 기업이 간단한 설립절차로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인정된 상법상 회사로서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유한책임을 진다. 인적회사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 폐쇄적이고 비공개적인 특징이 있다.


그런데 2011년 상법개정으로 유한회사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사원총수(50인 이하), 최저자본금(1000만원 이상), 지분양도 제한 규정 등이 모두 없어졌다. 다만 사채발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 2009년 상법개정으로 주식회사 설립 기준도 간소화됐다. 최저자본금이 폐지됐으며 소규모회사의 창업이 용이하도록 10억원 미만 회사의 발기설립시 정관에 대한 공증의무를 면제했다. 또한 주주총회 소집절차를 간소화하고 감사선임 의무를 면제했다.

이처럼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모두 설립이나 운영상 제한이 대폭 완화돼 실질적인 차이가 없어졌는데도, 유한회사는 외부감사와 공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 특혜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기업은 형태와 상관없이 출자자(주주) 뿐만 아니라 근로자, 거래처, 소비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현재는 유한회사의 외부감사와 공시를 주식회사보다 특별히 취급해야 할 정당성이나 사회적 합의를 찾기 힘들다. 또한 외부감사를 받고 감사보고서를 공개한다는 것이 곧 규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구성원의 신뢰를 확보하고 투명성을 높여 활발한 투자여건을 조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한회사든 주식회사든 상관없이 일정규모 이상의 자산이나 매출액을 가진 회사는 전부 외부감사와 공시를 의무화하는 게 옳다.

2014년 10월에 발표한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영국, 독일, 호주 등 주요국을 보더라도 회사법상 모든 회사에 외부감사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매출액이나 총자산이 어느 정도 이하인 경우에는 외부감사를 면제해주고 있다.

이번에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던 유한회사의 외부감사와 공시 의무는 규개위의 권고에 따라 제대로 시행하기 어렵게 됐으나 20대 국회에서는 이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완화라는 허울 속에 주식회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유한회사에게 특혜를 계속 허용하는 것은 사회감시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줄 뿐이다.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남편·친모 눈 바늘로 찌르고 죽인 사이코패스…24년만 얼굴 공개
  3. 3 "예비신부, 이복 동생"…'먹튀 의혹' 유재환, 성희롱 폭로까지?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명동에 '음료 컵' 쓰레기가 수북이…"외국인들 사진 찍길래" 한 시민이 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