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전가·핑퐁게임",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의 민낯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세종=김민우 기자 | 2016.06.01 04:38

[기획/구조조정 새판 짜자/①-2 컨트롤타워의 부재]손발 안맞는 정부 부처·질서없는 구조조정, 난맥상 그대로 노출


“기업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속도를 높이겠다. 내가 직접 챙기겠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 기자간담회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며칠 뒤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 대표들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맞장구를 치면서 구조조정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 부총리의 발언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 경제에 태풍으로 돌변한 과정이다. 예상치 못한 파장에 유 부총리와 기재부 내부에서는 ‘아차’하는 분위기였다는 후문도 있었지만 정부는 결국 지난 4월26일 조선과 해운업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구조조정을 ‘공개 수술’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모든 이슈들이 치밀한 사전조율과 비상 계획 없이 한꺼번에 공론의 장으로 끌려 나오면서 이후 구조조정이 질서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유일호 “왜 자꾸 나한테 물어보나. 잘 모른다”= 구조조정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데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은 유 부총리다. 하지만 유 부총리는 이후 ‘묘한’ 행보를 보였다.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겠다”던 발언은 “우물에서 숭늉 찾으면 안된다”(5월12일)로 이어졌고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던 발언은 “자꾸 저한테 물어봐도 제가 잘 모른다”(5월26일)로 달라졌다.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에 “왜 컨트롤타워가 없냐. 관계기관 TF(금융위원장 주도의 ‘구조조정협의체’를 지칭)가 지금 작동하고 있는 기구다”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반면 유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라고 지목한 ‘구조조정협의체’를 이끌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컨트롤타워는 경제장관회의다. 공식적으로 최종 결정하는 주체다”라고 다른 말을 했다. 컨트롤타워가 어디냐를 두고도 부처 수장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조정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경제장관회의도, 구조조정협의체도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주요한 의사결정은 모두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지원 결정은 지난해 10월22일에서 열린 ‘서별관회의’에서 이뤄졌다.

정부는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안 확정을 앞두고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홍기택 당시 KDB산업은행(이하 산은)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금융당국과 산은이 마련한 대우조선 지원안을 보류시키고 노조의 감원 동의서를 먼저 징구하기로 했다. 이 결정 바로 다음날 산은은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로 담당자들을 급파했다.

이는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은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판단한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우조선은 정부(산은)가 대주주인 기업이기에 정부가 나선 것’이란 입장이지만 당시 시중은행들이 대우조선의 크레딧라인을 축소하자 원상복구를 요구한데 대해선 해명할 길이 없다.

◇산업정책이 우선 vs 개별 기업 생사 결정이 우선=‘기업구조조정협의체’ 내부에서 부처간 불협화음도 터져 나온다. 지난해 10월에 구성된 ‘기업구조조정협의체’는 주관 부처인 금융위를 비롯해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차관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엔 조선업 대량 감원 문제로 고용노동부까지 합류했다.

‘기업구조조정협의체’는 3차례의 회의를 거쳐 조선, 해운, 철강, 유화, 건설을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정하고 산업구조조정의 큰 틀을 마련했지만 각 부처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협의체가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일단 금융당국과 채권단 내부에선 “산업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산업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많다. 조선·해운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업황 침체에 있는 만큼 산업 전망에 따른 구조조정 전략이 서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산업구조조정은 산업이 주이고 금융은 부수적인 것인데 지금은 금융만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산업의 큰 틀을 그려줘야 거기에 맞춰 개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게 아니냐”는 논리다.


산업부 입장은 전혀 다르다. “금융당국이 어깨에 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그걸 나눠 지고 싶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은 ‘산업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개별 기업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지만 산업부는 “개별 기업의 생사 결정은 채권단의 몫”이라며 선을 긋는다.

해수부는 해운업 구조조정 초기에 “국적선사가 2개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구조조정 방향에 혼란을 줬다. 유 부총리가 “국적선사가 2개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정리하긴 했지만 해수부의 초기 입장은 시장에 정부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반드시 살릴 것이란 기대를 심어줬다.

◇기재부 vs 금융위, 산은 vs 수은= 정부는 ‘개별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이 주도한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밝히고 있지만 채권단도 손발이 잘 맞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특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전면에 있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수은)은 수시로 부딪혀 왔다.

예를들어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몇해 전부터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합병을 희망했다. “STX조선의 기술력과 성동조선의 넓은 야드 등 양쪽의 강점을 살리고 고정비용을 낮추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는게 산은의 주장이었다.

반면 수은은 성동조선에 이미 2조원을 지원한데다 당시 STX조선의 부실규모가 성동조선보다 크다는 점, 성동조선의 경영 정상화가 곧 이뤄질 것이란 전망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두 은행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STX조선과 성동조선에는 각각 수천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투입됐다. 하지만 STX조선은 결국 법정관리가 결정됐고 성동조선도 법정관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구조조정 기업 처리를 놓고 채권단 내 이견은 늘상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산은과 수은의 갈등 이면에는 금융위와 기재부간 관할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채권단 내 이견과 다르다. 같은 국책은행이지만 산은은 금융위 관할인 반면 수은은 기재부가 관리한다. 특히 금융권에선 “수은이 무리하게 규모 확대에 치중하면서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수은은 차라리 ‘은행’이란 이름을 떼라”는 말이 나오고 반대편에선 “산은은 은행 역할 잘해서 그렇게 부실이 쌓였냐‘고 반박하는 게 현실이다.

◇“구조조정 경험은 산은이 제일” vs “산은이 구조조정 대상”= 구조조정의 전면에서 사실상 모든 실무를 도맡고 있는 산은을 놓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산은의 책임이 적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을 담당할 주체는 산은 밖에 없다’는 논리로 산은 중심의 구조조정을 밀고 간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 능력 면에서 산은이 가장 우수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라고 말했고 이동걸 산은 회장 역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산은이 가장 많은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조선·해운업의 부실을 키우고 이젠 스스로 공적자금 수혈 대상에 오른 산은에 계속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어주는게 맞느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은이 주채권은행이라고 경쟁사인 삼성중공업 등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게 타당하느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해상충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산은 등 금융권이 다 조선업체와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맞물린 이해당사자들인데 이들에게 구조조정 칼자루를 쥐어 주면 객관적인 산업구조 재편이 이뤄질 수 있겠냐”며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해 그들이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낫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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