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박원순의 일자리대장정에 '19세 컵라면 수리공'은 없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6.05.30 14:41

컵라면으로 끼니 때울 만큼 바빴던 19세 청년 수리공의 죽음…
박원순 시장 일자리대장정 '진정성' 찾고 소외된 곳 돌아봐야

지난 28일 19세 청년 한 명이 숨졌다. 청년은 서울 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수리공이었다. 놀기 좋은 토요일이지만 청년은 일이 바빴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가 고장났다는 연락을 받고 홀로 구의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들어오는 전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고인이 된 청년의 가방에선 챙겨먹지 못한 컵라면 1개가 나왔다. 하루 뒤인 29일은 그의 생일이었다.

청년이 일한 곳은 은성PSD란 서울메트로 용역업체였다. 청년이 숨지자 서울메트로는 '2인1조' 근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즉각 입장을 밝혔다. 1명은 수리를, 다른 1명은 전동차가 들어오는지 감시를 해야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청년의 과실이자 책임이란 뜻이다. 정확히 9개월 전인 지난해 8월 29일 강남역 스크린도어 수리공이 같은 사망사고를 당했을 때도 서울메트로는 같은 이야기를 하며 꼬리를 잘랐다.

하지만 2인 1조 매뉴얼은 '지키기 힘든 매뉴얼'이었다. 숨진 청년의 컵라면이 이를 말해줬다. 청년은 평소 가족들에게 "밥도 잘 못 챙겨먹을 만큼 바쁘다"고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컵라면은 굶지 않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 청년과 다른 직원 6명이 서울 강북 49개 지하철 역사의 스크린도어 전체를 맡을 만큼 바빴다. 2인 1조 출동은 '사치'일 만큼 인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메트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왜 못 지켰냐며 책임소재에서 빠졌다.

이 19세 청년의 죽음을 보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일자리대장정'이 떠올랐다. 박 시장은 지난해부터 대형마트 알바 체험도 불사하며 청년 일자리 마련에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해 일자리대장정을 마친 박 시장은 "서울시 일자리 정책은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느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온 이 청년과의 만남은 '일자리대장정'에 없었다. 구의역 이전에도 홀로 위험을 감수하며 스크린도어를 고쳤을 이 청년은 철저히 소외됐다. 더욱이 이 청년과 유사한 사고로 과거 스크린도어 앞에서 숨진 이들이 2명이나 더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만큼 기존 일자리의 질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시장의 일자리대장정이 좀 더 열악한 근로현장으로 향했으면 한다. 매스컴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돌아본다면 근로자들의 '진짜 목소리'가 더 잘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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