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주도의 구조조정으론 기업회생 어렵다"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 2016.06.07 07:30

[이코 인터뷰]길재욱 한양대 교수(전 기금운용평가단장, 전 한국증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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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길재욱 한양대 교수 인터뷰/사진=임성균 기자
“시장논리가 아닌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로 진행되는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은 시기를 연장시킬 뿐이다."

지난해 64개 공적 연기금 평가를 총괄하는 기금운용평가 단장과 31대 한국증권학회장(2014-2015년)을 지낸 한양대 길재욱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이 정부주도로 진행되면 시기를 연장시킬 뿐이며 시장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연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각한 적자와 부실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 채권단에 의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의한 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STX조선해양이 4조5000억원 금융지원을 받고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0년 자율협약에 들어갔던 성동조선, SPP조선, 대선조선 등도 여전히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려 풍전등화의 위기다.

길 교수는 “시장논리가 아닌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로 진행되는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은 시기를 연장시킬 뿐 실질적인 기업회생은 되지 못한다”면서 자본시장 논리의 구조조정 시장에서 연기금의 역할이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 시장논리에 의한 상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

기업이 설립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산업의 침체나 부실한 경영으로 쇠퇴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기업의 침체기에서 자연스런 구조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도 결국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길 교수는 “국책은행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은 시장상황에 맞춘 발빠른 구조조정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서 정부주도의 구조조정 시장에서 민간중심의 수익·비용 논리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정부나 정책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이 당연시됐고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정책자금 형식의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수익성이 악화돼도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고 좀비화된 기업들이 ‘제살 깍아먹기’ 식으로 난립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만일 시장논리에 의한 구조조정이 됐더라면 구조조정 시기를 앞당길 수 있고 적어도 1~2개 정도의 기업은 일찍 정상화의 길로 가지 않았을까요?” 라며 길교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 연기금이 구조조정 시장에서 큰손이 되야

길 교수는 “연기금이 구조조정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책은행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으로는 뒤늦은 회사정리밖에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연기금이 '장기 인내 투자자'로서 긴 호흡을 가지고 구조조정 전문펀드의 자금공급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들은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적절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보다 수익성이 높은 대체투자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길교수는 "연기금이 장기 인내 투자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리스크관리와 성과관리 능력의 완비가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시장은 투자가에게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를 제공한다. 수익논리에 따른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면 우량 자산의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부실기업인 배드 컴퍼니(Bad Company)를 구별하여 보다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길 교수는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이 구조조정 전문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림으로써 상시적 구조조정 시장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시장에서 연기금 역할이 강화된다면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돼 기업이 부활하고 근로자나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나 국가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 토종 구조조정 전문펀드 육성이 필요

길 교수는 “국내 토종 펀드가 대형화되고 전문화돼야 한다”면서 토종 구조조정 전문펀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여 수조원대의 이익을 챙겼으며 골드만삭스는 진로, 대한통운 등 회생기업 무수익채권(NPL) 투자로 큰 수익을 낸 바 있다.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왈가왈부 논란이 많지만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보는 안목과 투자기법은 부러운 일이었다.

이에 국내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해 사모펀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까지 했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사는 총 316개, 약정액 58.5조원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KDB산업은행의 동부특수강, 케이스톤 파트너스의 금호고속, 보고펀드의 동양생명 매각과 같이 사모펀드를 통한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들이 나왔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 구조조정 전문펀드가 일천한 역사로 인해 숫자나 규모가 크지 않은 실정이다.

길 교수는 “언제까지 구조조정 시장을 외국계 펀드에게 내줄 수는 없다”면서 연기금이 구조조정 시장에서 적극적인 투자자 역할을 수행하고 토종 펀드들의 활발한 시장참여가 이뤄진다면 국민경제 체질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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