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녹색성장의 역설…정부가 '디젤차 천국' 만들었다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 2016.05.31 13:31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연비'에 무게 둔 자동차 연료 정책, '미세먼지' 확산에 일조

아우디폭스바겐의 2.0리터 TDI 디젤 엔진. /사진=아우디폭스바겐
"저탄소자동차 협력금 제도가 시행이 유예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예정대로 됐다면 우리나라 도로에는 온통 디젤차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동차 산업계와 정부의 매개 역할을 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김용근 회장이 최근 기자를 만나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디젤차를 화제로 올리며 한 말이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도는 신차를 구입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이나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환경부 주도로 도입이 추진돼 당초 2014년 7월 시행하기로 했지만, 2차례 연기를 거쳐 2020년 말로 시행이 연기됐다.

같은 배기량이라도 연비가 좋아 주행 거리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디젤차 승용차의 경우 부담금을 내지 않겠지만, 가솔린차는 25만~700만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해 디젤차 확산을 부채질했을 것이라고 산업계는 보고 있다.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시행이 연기됐지만, 최근 몇년간 디젤 자동차가 급속히 확산된 것은 정부가 시장을 왜곡시킨 결과다. 유류세 정책에서부터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까지 가솔린차에 불리하고 디젤차에 유리해 자동차 시장이 디젤차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디젤차의 매력, '연료비용'이 상쇄 = 차 자체로만 본다면 디젤차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디젤 자동차는 엔진이 복잡하고, 진동을 견디려면 더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가솔린차에 비해 비싼 게 보통이다.

폭스바겐 CC의 경우 2.0디젤 모델(TDT BMT)이 가솔린(2.0 TSI)에 비해 380만원 더 나간다. 여기에 엔진오일 교환에 많게는 2배가 들 정도로 디젤 자동차의 정비 비용 부담도 크다. 소음과 진동 등 정숙성 면에서도 디젤차는 가솔린차에 비길 수 없다. 디젤엔진은 특히 연료가 높은 온도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불완전연소도 빈번해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를 가솔린엔진보다 훨씬 많이 내뿜는다.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석유제품 가격. 92RON 휘발유가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일반 무연 휘발유, 황 함유량 0.001% 경유가 국내 일반 경유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사이트 캡처
하지만 디젤차는 연비가 좋고, 특히 국내에서는 연료 가격까지 싸기 때문에 많은 단점이 상쇄된다. 우선 폭스바겐 CC 디젤과 가솔린 모델의 복합연비는 각각 리터당 13.5km, 10.5km다. 연료통에 같은 양의 연료를 채우면 디젤차가 30% 정도 더 간다는 얘기다.

국제시장에서 경유는 휘발유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한국석유협회의 주유소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7일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 거래된 일반 휘발유(92RON)는 리터당 가격이 425.35원이다. 경유(황 함유량 0.001%)는 428.32원으로 조금 더 높다.

하지만 같은 날 한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410.44원으로 자동차용 경유 1189.97원보다 220.47원 비쌌다. 휘발유에 세금이 238원 정도 더 붙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연비 위주 시장 규제, 디젤차 확산 불러 = 최근 수년간 세금 외에도 정부 정책은 '친 디젤'이었다. 전세계 국가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인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온실가스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역점 추진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대표적이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로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₆) 등을 들 수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집중됐다.

녹색성장위원회가 2009년 7월 발표한 '녹색성장 국가전략'에는 '탈석유·에너지자립강화' 추진전략 중 하나로 '에너지 저소비·고효율사회 구축'이 명시돼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에너지 소비는 곧 이산화탄소 배출을 의미한다. 녹색성장위는 수송 부문 대책으로 연비 기준 강화, 에너지 다소비 운수업체 신고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현대자동차 그랜저 디젤. /사진제공=현대차
이에 따라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강한 연비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4년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2020년까지 자동차 평균 연비를 리터당 24.3km 달성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의 연비 규제 계획 발표했다. 미국(18.8km/ℓ), 일본(18.8km/ℓ)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목표 수준을 설정한 것이다.

당장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자동차 등의 수요가 팽창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동차업체들의 대안은 가솔린 엔진 다운사이징과 함께 디젤 승용차를 늘리는 것이었다.


현대차만 해도 2014년 발표한 연비 향상 로드맵에서 2020년까지 평균 연비를 25% 높이기로 하고 방법으로 신형 디젤엔진 개발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디젤 승용차 라인업은 1.6ℓ 엑센트 디젤과 아반떼 디젤, 1.6ℓ i30 디젤, 1.7ℓ i40 디젤 등 중·소형 위주에서 쏘나타와 그랜저까지 확대했다.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준대형 세단 G80도 2.2 디젤 모델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다만 최근 디젤차 미세먼지 논란이 확산되면서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정부 '클린디젤' 확산에 주력…"목표 초과 달성" = 경유자동차 소유자에게 자신들이 오염시킨 만큼의 복구비용을 부담시키기 위한 목적인 경유차 환경개선부담금도 2009년 유로4 차량부터 납부가 면제됐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디젤 자동차를 '클린디젤'이라고 부르며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2010년 12월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0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에서는 관계부처 공동으로 ‘세계 4강 도약을 위한 그린카산업 발전전략 및 과제’를 발표했다. 정부가 밝힌 '그린카' 양산 계획에는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하이브리드차와 함께 클린디젤차 개발 계획이 포함됐다.

당시 정부는 '클린디젤차'에 대해 "유로5 기준 이상을 만족하고 이산화탄소 규제에 대응가능한 초고효율 디젤차"라고 설명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하이브리드자동차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구체적인 클린디젤차 확산 방안으로 △클린디젤 커먼레일 핵심부품과 후처리시스템 등 100% 국산화 △유로 6 기준을 총족하는 중소형버스 등을 구입할 경우 가솔린차와 가격 차이 전액지급을 검토 등을 제시했다.

또 정부는 2011년부터 5년간 사업비 1871억원을 들여 '클린디젤차 부품산업 육성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린차' 보급 계획은 사실상 '디젤차'의 비중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2015년 자동차 내수 시장에서 21%를 그린카로 보급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2.9%를 클린디젤차가 점유하게 하겠다는 것.

승용차에서 디젤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4.7%로, 사상 처음으로 가솔린엔진 모델(44.5%)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정부의 계획은 초과 달성된 셈이다. 2010년만 해도 디젤 승용차의 비중은 18.5%에 머물렀다.

국내 자동차 업체 고위 관계자는 "경유 자동차의 전체 미세먼지에 대한 기여도 면에서 논란이 많지만 가솔린차에 비해 디젤차가 미세먼지를 훨씬 많이 내뿜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나친 이산화탄소 감축 위주의 정책이 비정상적인 '디젤차 천국'을 만들어낸 것으로, 현실에 맞게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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