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과 직원의 사생활

머니투데이 조수연 변호사(기업분쟁연구소)  | 2016.05.30 09:21

[the L] "비밀번호 알려줬다고 개인적인 직원 이메일 열람까지 동의한 건 아냐"



Q. IT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입니다. 사원 K씨가 우리 회사의 고객리스트와 영업비밀을 빼돌리는 것 같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직원의 컴퓨터를 샅샅이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불법이라던데 제가 직원 컴퓨터를 뒤져보면 처벌받나요?

A.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직원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의심되고 긴급히 대처할 필요가 있으며 그 열람이 업무에 관한 범위에 한정된다면 '정당행위'가 돼 처벌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의 정보관리 시스템은 회사마다 다릅니다. 내부망이 따로 있고 USB에 파일 하나를 옮기려 해도 승인을 받아야 하거나 특정 정보가 담긴 파일은 인쇄 횟수가 제한되는 등 관리가 철저한 곳이 있습니다. 반면, 개별통신망이 없거나 개인용·업무용 메일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등 보안체계가 허술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직원들의 이메일 등 통신에 대한 감시는 문제될 수 있습니다.

실시간 인터넷 접속 모니터링, 이메일 모니터링, 메신저, 키보딩, 모니터 캡처 등의 방법으로 감시가 이뤄지는 직원의 통신에는 직원의 개인정보가 들어있고 그 자체는 통신의 자유로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 비밀은 헌법(17·18조)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해당 권리를 침해할 경우 형법과 통신비밀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처벌 규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게 됩니다.

다만 어떤 행위가 형법상 처벌받는 행위라 해도 그것이 사회 상규상 그럴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면 벌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정당행위(형법 20조)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표현합니다. 당장 이 비밀이 새어나가면 몇 억의 손해를 입게 될지도 모르고 앞뒤 상황을 보니 진짜 배신자일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회사의 입장도 균형적으로 고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비밀번호가 설정된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내 다른 컴퓨터에 연결한 뒤 메신저 대화 내용과 이메일 등을 본 경우로 피고인(회사)이 형법상 전자기록등내용탐지죄(형법 제316조 제2항)로 기소됐지만 정당행위가 성립된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영업비밀 유출 등의 혐의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컴퓨터 등에 혐의와 관련된 자료가 저장돼 있을 개연성이 컸으며 이를 긴급히 확인하고 이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업무와 관련된 정보만으로 열람 범위를 한정하고 업무 정보를 회사에 귀속시키겠다는 직원과의 약정이 있었으며 검색 결과 고객들을 빼돌릴 목적의 견적서와 계약서, 계약을 빼돌렸다는 취지의 메신저 대화자료, 이메일 자료 등이 발견됐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에서 회사가 직원의 개인정보를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열람동의서 등을 작성합니다. 이때 약정의 구체적인 조항에 따라 '이메일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 것인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판례는 직원의 동의나 약정이 있어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열람할 수 있는 정보의 범주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컴퓨터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사실만으로 자동로그인 설정된 계정의 자신의 개인적인 이메일 열람까지 동의했다고 보지 않고 정보통신망법 위반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서울지법 2003년 5월14일 선고 2002노9492 판결)

조수연 머스트노우 변호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 출신으로, 기업 자문과 소송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 엘(the L)에 영업비밀과 보안문제와 관련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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