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지우든지 나가든지… " 女간호사 모성보호 '캄캄'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 2016.05.27 05:32

인권위 "보건의료 女종사자 '차별·진정' 3분의1, 임신·출산 탓…내달 정책권고"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나선 간호과 학생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사진=뉴스1
#. 결혼 사실을 알리자 '각서'를 쓰라고 했다. '결혼 후 3년 이내에는 임신을 하지 말 것'이 내용이었다. 임신을 한 선배 간호사는 '야근과 수술실 방사선 등 때문에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고 들었다. 눈물이 났다. 나뿐 아니라 언젠가 태어나게 될 아이까지 내 직업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되는 것 같아 자책까지 들었다. 지방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2년차 간호사 이명인씨(가명) 얘기다.

대형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은 간호사와 조무사 등 여성근로자 비중이 높은 게 현실이지만 오히려 모성보호에서는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신·출산 과정에서 부당한 인사조치에 내몰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모성보호 침해 실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오는 6월 고용노동부에 관련 정책권고를 낼 방침이다.

26일 인권위에 따르면 보건의료분야 여성종사자를 대상으로 인권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59건의 분석대상 사건 가운데 임신·출산으로 인한 차별·진정이 21건으로 3분의1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이 된 59건은 2001년부터 2015년 7월까지 인권위가 종결한 사건 가운데 보건의료분야 여성종사자의 모성보호·성차별·성희롱과 관련이 높은 사건만 추린 사례다.

◇보건의료 여 종사자 중 차별 3분의1 "임신·출산이 원인"=인권위가 지난해 7월부터 9월 사이 전국 각지 종합병원 간호사 44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자료에는 생생한 현장 증언들이 나왔다. 낙태를 종용하거나 임신했다는 이유로 근무 부서가 바뀌는 경우 원치 않는 퇴사를 하는 등 상식 밖의 사례가 허다했다. 승진에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사직 종용, 해고 위협 등도 다수였다.

"지금 애를 가지면 근무를 나오지 못하니까 애를 지우든지 나가든지 하라고 해서, 결국에는 낙태를 했어요."
"선배 간호사랑 후배 간호사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중간급인 제가 응급실 쪽으로 한 달 로테이션을 갔었죠."
"아이가 하나 있는 간호사가 둘째 임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저히 임신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거든요. 선임에게 물어봤더니 '여기에서 임신하면 안 되지'라고 해 결국은 퇴사했어요."


/사진=이승현 디자이너
채용 단계부터 이미 임신·출산을 꺼려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인권위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9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시 미혼 선호 경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58.3%가 "약간 혹은 많이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내 한 대학병원 5년차 간호사인 A씨는 "임신을 한 동료 간호사가 있었을 때 선배 간호사가 '남은 부원들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버릇처럼 했다"며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면 힘든 부서로 좌천된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다음달 고용부에 보완 권고…남녀평등 안 지키면 페널티"=모성보호에 대해선 관련 규정이 있지만 일선 병원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를 보완할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에 정책권고를 준비 중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6월 안에는 정책권고를 할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현행법에 남녀평등 조항이 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련법 개정이나 추가조항을 마련하자는 취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행법이 있는데도 모성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관리감독 강화와 안내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있었다"며 "잘 지켜지는 곳은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은 곳에 페널티를 주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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