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도 천만 영화에 등극할까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 2016.05.13 07:05

<8> '천만 영화' 흥행공식… '스크린 독점' 보다 차라리 '개봉일'이 중요하다?

5월 11일 기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누적 관객수는 764만270명으로 집계됐다. 아직도 주말 150만여명이 본다.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포스터
"'시빌 워'(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봤어? 볼만 하던데. 천만 가는 거 아니야?" "그러게, 주변서도 거의 다 본 듯하더라고." "'어벤져스'(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나 '인터스텔라'도 천만 넘었잖아.""극장이 그렇게 몰아주는데 안 가는 게 이상하지."

대한민국에서 '천만 영화'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한다. 작년에만 3편의 영화가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베테랑'(1300만여명), '암살'(1200만여명) 그리고 '어벤져스'(1000만여명).

천만 영화 소식이 들리면 대표적인 반응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그렇다고 그 정도나(많이 볼) 된다고 생각해?"이다. 본인이 보고도 '천만 명이나 볼 정도인가?' 하는 의심병이 생각보다 넓게 퍼져있다.

두 번째는 "온통 그 영화뿐이야"이다. '몰아줬다'는 얘기다. 천만 영화는 '스크린 독점'과 함께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스크린 수는 절대적으로 많이, 시간은 조조부터 심야까지 폭넓게'.

체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 초에 주말 상영 시간을 살폈다. 집에서 가까운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미처 못 본 과거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한다고 해 쾌재를 불렀는데, 입맛만 다셨다. 상영은 수요일(11일) 조조와 오후 상영, 단 두 번. 휴가를 내지 않고는 불가하다. 토·일 주말에는 시빌 워와 '곡성' 딱 두 편만 종일 상영한다. 시빌 워를 본 나는 곡성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멀티플렉스 관을 살폈다. 다양성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와 'CGV 강변' 두 곳의 이번 주 상영 표를 비교했다. 스크린 수가 많으니 '구색'을 갖췄다. 하루에 많게는 4번 정도까지 다양성 영화도 상영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 시빌 워 상영 스크린 수는 압도적이다.

'역시 스크린 독점이 최고의 힘?'이라고 생각할 즈음, '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 지음, 어크로스)이라는 신간에서 재미있는 데이터를 발견했다.

저자는 우리 산업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드문데 특히 영화산업이 그렇다고 봤다. 한 명이 봐도 천명이 봐도 제작비는 같다. 즉 많이 볼수록 제작비를 빨리 회수하고,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인데 '스크린 수가 무조건 많다고 대박이 난다는 게 아니다'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기대 이하면 배급사는 재빨리 상영관 수를 줄인다. 특히 저자는 일정 수 이상 스크린이 늘어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의 연구 결과다. 여기서 나온 스크린 수 임계치는 1966개.

저자가 2015년 흥행 50위 한국 영화를 파악하니 평균 스크린 수는 694개, 천만 영화에 오르며 최대 스크린 수를 기록한 영화 암살은 1519개로 집계됐다.

그런데 암살보다 100만 관객을 더 모은 베테랑은 스크린 수가 400개나 적었다. 단기간 더 많이 봤다는 거다. 반대로 600만 여명 정도가 봐 아쉽게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사도'나 '내부자들', '연평해전'의 스크린 수는 1000~1200개로 천만 영화에 비해 만만치 않았다. (249쪽 '될 영화 몰아주기'에는 이유가 있다 : 파레토 법칙')


경제학적으로 문화산업을 분석한 저자는 초기 대박이 예상되는 영화에 스크린 수를 몰아주는 건 규모의 경제학을 이뤄야 하는 자본의 속성이 작용하니 불가피한 시도라고 봤다. 하지만 모두 대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개봉영화는 11편이었는데 이 중 3편만이 천만 영화에 등극했고, 3편은 300만 명도 채우지 못했다.

저자는 이후 충분조건이 뒷받침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저자는 '유머' 코드 외에도 '개봉일' 이나 경쟁작 변수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년 전 개봉한 '역린'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380만여명)를 받은 결정적 이유를 개봉 일이 '4월 16일'이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2015년 '천만 영화'에 등극한 3편의 영화. 왼쪽부터 영화 '베테랑', '암살', '어벤져스'.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포스터 이미지
사실 천만 영화는 여러 요건을 갖춰야 한다. 과거부터 온 공식 1번은 1인이 2회 이상, 즉 가족 동반처럼 저변을 확대하며 몇 번 본 관객이 나오는 영화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 흐름도 타야 한다. 언론의 도움도 필요하다. 700만~800만 명 정도여도 성공인데 각종 미디어에서 힘을 실어줘야 천만 고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머코드나 사회적 이슈도 꽤 중요한 요소로 얘기된다.

'명량'이나 '국제시장'은 앞서 말한 기존 흥행 공식의 표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도력에 대한 갈망, 정권 색깔과 세대에 대한 향수 등의 흐름이 뒷받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베테랑은 '재벌'에 대한 반감심리, '제작비를 한국이 다 해결했다'는 농담이 나왔던 인터스텔라는 한국의 교육열로 설명한다. 동료나 친구와 본 직장인 부모가 다시 아이를 앞세워 영화를 두 번 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 해는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 100주년이었고, 인공지능(AI)과 같은 과학 이슈가 중요한 흐름으로 떠올랐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책에서 분석한 2015년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31편 목록을 보니 그중 11편을 봤다. 그중 보고 실망한 영화는 3편. 11편 중 나를 포함한 300만 명 이상이 봐서 그나마 제작비를 건진(?)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6편밖에 안 됐다. 그래도 보고 실망한 영화에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나머지 20편 목록 중 못 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없다.

책은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인용, 파레토 법칙을 보여준다. "2015년 한국 상업영화는 155편이고 그중 15%인 23편에 총관객의 80%인 8188만 명의 관객이 집계됐다. 2014년 개봉해 2015년 천만 영화로 분류된 국제시장을 넣으면 15%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더 커진다."

같은 시기 다양성 영화 관객은 약 200만 정도로 집계됐다. 다양성 영화를 개봉영화만큼 찾아보는 나로서는 다양성 영화가 더 많아지면 좋겠고, 스크린 수도 지금보다 늘어나면 좋겠다. 동시에 상업 영화라 해도 흥행 공식을 쫓기보다 색깔 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시나리오 작가 및 제작자, 즉 좋은 작품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작년 내가 선택한 영화에 대한 편향과 20%도 아닌 15%의 영화가 흥행의 80%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영화산업을 받치는 현실을 다시 해석하니 '숫자는 많아도 재미있는,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는 별로 없다'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시빌 워가 천만 영화에 등극할 것인가'로 시작한 잡생각의 끝도 쏠리는 대중보다, 스크린 독점보다, 한국 영화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옮겨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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