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교수들은 왜 신문에 칼럼을 쓰는가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2016.05.12 04:26
서울대학교에선 학교에 관한 중요한 신문기사와 함께 교수들이 쓴 신문 칼럼을 클리핑해서 매일 교내에 e메일로 전송한다. 이 서비스는 비교적 인기가 높은 것 같다. 전공이 전혀 다른 교수들에게 내 칼럼에 대한 인사를 받은 적이 많다. 일부 단과대학 홈페이지에는 소속 교수들의 칼럼을 정리해서 소개해놓았다. 몇 군데 둘러보니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런데 왜 학술논문은 그런 방식으로 널리 소개하지 않는가? 오히려 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칼럼은 전문적인 내용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짧게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시한 것이라 사회에서 널리 읽히고 그 결과 영향력이 크다. 그렇다면 왜 교수들은 학술논문을 쓰는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신문에 칼럼을 쓰면 될 터. 칼럼은 분량이 제한된다? 그러나 학술논문이 어차피 널리 읽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종종 회의가 든다. 과연 몇 사람이 이걸 읽게 될까? 내가 쓰는 법학논문이 법원의 재판에서 직접 참고가 되고 사회에서 분쟁이 덜 발생하는데 얼마나 기여할까? 정치학과 경제학 논문이 정치와 경제 발전에 기여할까? 전 세계적으로 법학만 해도 수많은 학술지가 있다. 전 세계 법학학술지의 랭킹을 집계하는 유명한 사이트에 등록된 학술지가 현재 1538종이다. 물론 영어로 발간되는 것들만이다. 세계 최대 사회과학 사이트 SSRN에는 약 52만편의 학술논문이 게시되어 있다.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 학계에선 학술논문이 “친구들 읽으라고 쓰는 것”이란 농담이 있을 정도다. 논문이 널리 읽히지 않는다면 모두 낭비적인 헛일을 하고 인생을 보내는 셈인가?

실제로 탁월한 학자들이 언론에 자주 나서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부 교수는 아예 그 길로 나선다. 결국 학교 밖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학교 밖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닌 다음에야 명 칼럼니스트 교수가 더 유명하고 실력이 있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국회나 정부, 기업과 단체에서 칼럼을 보고 필자와 접촉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활동영역과 인맥이 저절로 넓어진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경기장 밖에서 훈수 두는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세상은 얼굴에 흙과 땀과 피를 묻힌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온갖 실책을 범하면서도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케인스는 다른 말을 했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그네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라는 것이다. 결국 서생들의 장단에 춤추는 존재에 불과하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캐스 선스틴의 말을 빌려보자. 학술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은 모종의 도덕성을 정립하는 과정이다. 균형이 요구되고 반복이 허용되지 않으며 치열함과 정직성을 요구받는다. 이른바 경기장의 선수들은 한가하다고 생각할 만큼 철저한 검증을 거치고 그 결과 학술논문이 탄생한다. 공정성과 이념적 관용성을 요구받고 논쟁 과정의 정직성이 존중된다. 이 프로세스는 연구자에게 체화되어서 그네들의 언행을 통해 표출되고 결국 사회를 움직이는 상식의 기초가 된다.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람들은 종교, 문화, 이익집단과 언론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식의 영향 아래 있다. 학술연구는 그 상식의 중요한 일부를 형성하는 것이다.

아무리 센스있는 칼럼이라 해도 묽은 죽과 같은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쓴 칼럼이라 해도 같다. 학술논문에 내장된 치열함과 엄중함이 결여되어 있어서다. 그래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신문 칼럼이 아니라 결국 깊이 있는 연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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