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오늘…몬테소리, 여성과 아이의 불행 짊어지고 잠들다

머니투데이 이슈팀 김종효 기자 | 2016.05.06 05:50

[역사 속 오늘]비웃음·억압을 딛고 어린이 보호·남녀평등 위해 헌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마리아 몬테소리/사진='몬테소리' 웹사이트
"내 인생은 어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바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들의 세계다." -마리아 몬테소리-


64년 전 오늘(1952년 5월 6일)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한 여성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의 주름이 유독 깊은 이유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기구했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과 어린이들의 삶을 짊어지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을 앞두고 그가 살아왔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이 당시 여성들이 살아가는 대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길 거부했다. 이탈리아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의대에 입학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격리된 체 수업을 받는 등 차별은 있었지만 6년 만에 로마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해 최초의 이탈리아 여의사가 됐다.

1896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여성권리대회에 이탈리아의 특사로 파견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 문제에 대해 연설을 했다. 당시 유럽의 남녀간 격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졌고 여성 교육현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동료의사 주세페 몬테사노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양가의 반대로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 몬테사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당시 미혼모의 존재는 용납될 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아들은 은밀히 양부모에게 맡겨졌다. 15년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조카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버려진 여성. 격리된 아이. 당시 대부분의 여성과 아이가 겪는 불행 중 하나였다. 그는 불행을 개선을 위한 의지로 승화시켰다. 1907년 그녀는 로마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빈민들을 위한 탁아소 ‘어린이의 집’(Casa dei Bambini)을 열었다.


당시 어린이는 통제돼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됐다. 이에 따르지 못한 아이는 정신지체로 분류됐다. 체벌과 주입식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하지만 그는 어린이를 잠재력을 지닌 인격체로 봤다. 어린이의 신체 및 정신의 발달을 위한 자연스러운 교육.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역설했다.

어린이의 신체 구조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이때와서야 처음 개발되었다. 감각 훈련을 중시해 아이들이 흥미로워 하는 갖가지 놀잇감과 교구가 개발됐다. '몬테소리 교육법'이 비로소 창시된 것. 몬테소리 교육법은 많은 교육자의 공감을 얻어 전세계로 확산됐다.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 1933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독립적인 인간을 길러낸다'는 이유로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 많은 몬테소리 학교가 폐쇄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받은 비웃음과 억압 만큼 진보했다.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어린이에 대한 보호·존중과 남녀평등을 위해 '마리아 몬테소리'는 깊게 패인 주름에 자신의 기구한 삶을 묻고 다른 여성과 어린이의 삶을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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