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대우조선해양, 국회로 보내라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 2016.05.05 08:56

편집자주 |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2008년 금융위기 태풍이 미국 경제를 강타했을 당시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 구제계획(TARP)에 따라 7000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긴급 자금지원을 했다. 그해 10월 의회가 자금사용을 승인했고, 1차분 3500억달러를 77일만에 쏟아부었다.

전염성 강한 금융부실이 경제 전체 시스템을 파괴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고안된게 TARP였지만, 나중엔 미국 경제의 골간인 자동차 산업을 살리는데도 100억달러를 훨씬 넘는 돈이 쓰였다. 헨리 폴슨 당시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장은 FRB가 TARP 자금을 지원할수 있게 해달라며 뻔질나게 국회를 찾아 의원들을 설득했다.

대량실업이 예고됐고, 당장 자금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공장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절박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미 정부가 요즘 흔히 듣는 말로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된다며 의회에 간청했지만 자동차 업종에 대한 TARP지원은 미 상원에서 부결됐다. TARP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미 자동차 빅3사 회장들이 디트로이트에서부터 워싱턴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가 청문회장에 섰다. 이틀 꼬박 참석하면서 돈을 달라고 사정한 끝에 돈을 얻어낼 수 있었다.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이 이어졌다. 이 모든 장면은 고스란히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긴급 자금이 투입됐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그렇게 미국 자동차산업은 다시 살아났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데 과정에 대해 미국이 거친 '국민적 합의' 과정은 이런 모습이었다.

조선 해운을 필두로 하는 업계 구조조정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레토릭으로 뭔가 대단히 그럴싸하고 세련된 정책인것처럼 출발했지만, 한마디로 부실기업에 세금 집어넣자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력 업종 구조조정이 간단한 일일 수가 없는만큼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그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돈부터 내라는 식으로 중앙은행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지금 댁네 아이가 곧 죽게 생겼으니 돈부터 부쳐라"는 식의 보이스피싱을 보는 듯하다. 정부의 책임을 한은에 넘기고 한은 때문에 일이 어그러지고 있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한은으로선 '적반하장'일 수 밖에 없다.

현행법상 가능한 수출입은행 출자야 당장 검토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정도로 치유될 부실이 아니라는건 누구나 안다. 산은법이나 한은법을 고쳐 추가 자본확충이 필요하거나, 추가경정 예산을 짜서 직접 재정을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시 국민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고, 돈 주인들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유일호 부총리는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국민적 합의를 거칠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자본확충을 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가장 확실한 국민적 합의는 국회를 거치는 일이다.


의지만 있다면 법 개정안 발의와 통과에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 지금도 국회는 열려 있다. 총선 참패후 박근혜대통령은 야당과 만나겠다고 했다. 이런 일로 만나지 않으면 언제 만날까 싶다. 마침 이란도 다녀왔으니 순방 결과도 설명하고, 이란에 배를 만들어 팔아야 할 회사들 숨통을 터주자는 말도 자연스럽게 할수 있을 것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응급수혈이고, 박대통령의 '노동개혁 4법'은 그와 별개로 추진해야 할 체질 개선과 안전장치이다. 야당 역시 산업구조조정이 투트랙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지레 야당이 대량해고가 수반되는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발목을 잡아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야당이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박대통령 말대로 사사건건 야당이 발목잡아서 일 안된다는걸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니 정치적으로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추경이 필요하다면 특정 산업 구조조정만을 위한 '원포인트 추경'이라도 못할게 없다. 공무원들은 얼마든지 날새서 예산안을 만들 수 있고 추경요건은 '국가긴급사태' 개념 만큼이나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게 정치다.

구조조정 문제를 국회로 보내야 할 또 하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책임'이다. 부실기업의 경영을 맡으면서 거액의 연봉을 받고, 분식회계에 가까운 눈속임을 하고, 그 좋은 자리에 가기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했던 그런 행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수십명에 달하는 '고문'과, 경영진, 이들을 감독해야 할 국책은행과 정책 당국 담당자들, 정치권의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주게 되면 배우는 것 없이 다음에도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 하게 된다.

19대 국회는 이미 끝난거나 마찬가지고, 20대 국회가 열려야만 될 거라고 하지만 18대 국회 마지막 회기에서도 국회선진화법 같은 법들이 통과됐다. 정부가 '상반기중' 최적의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한데서도 알수 있듯, 조선 해운 구조조정이 이번주나 다음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아니다.

워런 버핏은 금융위기 당시 주주들에게 "파도가 밀려 나가면 누가 물 속에서 바지를 벗고 놀고 있었는지 추한 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다. 조선 수주와 해운 물동량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 산업의 밑바닥이 드러나 있는 지금이 누가 우리 경제를 위험으로 몰고 가면서 '좋았던 시절'을 누렸는지를 단죄할 골든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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