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 세상]"황사마스크 썼는데 배 나오면 테러범?"

머니투데이 강선미 기자 | 2016.05.06 11:00

경찰청 배포 '테러예방 포켓 매뉴얼', 외모에 따른 차별 생길라 비판 목소리

편집자주 |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정보와 감동을 재밌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좁게는 나의 이야기로부터 가족, 이웃의 이야기까지 함께 웃고 울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난달 경찰청은 '테러예방 포켓 매뉴얼' 7만부를 제작해 경찰관에 배포했습니다. 지역경찰·교통‧형사‧외사 등 담당 업무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테러 예방 활동에 힘쓸 수 있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이 매뉴얼에는 테러 취약시설 점검 리스트, 화생방 테러 발생시 통제선 설정 방법 등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순찰 요령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반적 테러범의 용모'를 적은 식별 요령이 따로 첨부됐습니다.

"마스크나 수염, 모자 등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지나치게 배가 나왔거나 계절에 맞지 않은 두껍고 긴 옷 착용, 땀을 많이 흘리며 불안해 보이는 사람."

이러한 경찰청의 발표에 어떤 네티즌들은 "내 모습이 테러범?"이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늘 내 모습이네. 배 좀 나왔고 황사 마스크에 모자 쓰고 다녔는데"라는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오늘같이 미세먼지 많은 날에 저같이 배 나온 사람은 외출하면 안되겠군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에 사는 A씨(38)는 '불쾌하다'는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배가 살짝 나온 거대한 체구와 우락부락한 인상으로 과거에도 수 차례 불심검문을 받았는데, 테러범이라고 정의해 놓은 매뉴얼 때문에 또 다시 경찰관들의 집중 공략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A씨는 "경찰이 이렇게 생긴 사람이 테러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해버렸으니, 일반 사람들까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않겠냐"고 걱정했습니다.


2년 전 미국은 피부색이나 인종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을 금지시켰습니다. 특정 인종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경찰 수사가 차별을 낳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미국 미주리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의 비무장 흑인 총격살인 사건도 경찰관들에게 주입된 차별 인식에서 기인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 외에도 외모롤 기인해 발생되는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합니다. 매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인권상담사례집'에는 외모에 근거한 차별이 한번도 빠짐없이 실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청은 '테러범의 외모'를 규정하며 또 하나의 차별과 편견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세계적으로 커지는 테러 위협 속에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경찰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목적만을 고려한 지침이 차별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테러 예방 순찰을 위한 사전정보 제공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단순히 외형적 특징만을 가지고 수사에 나서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경찰청 제작 대터러 예장 포켓 매뉴얼에는 테러범 및 의심물체 식별요령이 포함돼 있다. /사진제공=경찰청

베스트 클릭

  1. 1 남편·친모 눈 바늘로 찌르고 죽인 사이코패스…24년만 얼굴 공개
  2. 2 "예비신부, 이복 동생"…'먹튀 의혹' 유재환, 성희롱 폭로까지?
  3. 3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4. 4 불바다 된 LA, 한국인들은 총을 들었다…흑인의 분노, 왜 한인 향했나[뉴스속오늘]
  5. 5 계단 오를 때 '헉헉' 체력 줄었나 했더니…"돌연사 원인" 이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