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 '변태행위' 강요 남편 흉기로 찌른 아내, 법원은…

머니투데이 장윤정(변호사) 기자 | 2016.05.03 09:39

[the L] 대법 "흉기로 찔러 사망케 한 것은 방위행위 도 넘은 것"

가정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항하다 가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혼소송 진행 중 별거하고 있던 아내를 찾아가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한 남편의 복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아내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있다.(2001도1089)

아내 A씨는 1987년 결혼한 남편 B씨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B씨는 낭비와 도박 습관이 있었다. 평소 사소한 이유로 A씨에게 자주 폭행과 협박을 했을 뿐만 아니라 변태적인 성행위도 강요했다. 결국 이들의 결혼생활은 파탄났고 1999년 11월부터는 별거에 들어갔다.

A씨는 2000년 1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계속 중이던 같은 해 4월 B씨는 A씨가 살고 있는 월세방으로 찾아갔다. A씨는 행여 B씨가 흉기로 행패를 부릴 것을 염려해 부엌에 있던 부엌 칼 두 자루를 방 침대 밑에 숨겨둔 뒤 문을 열어 줬다. 방에 들어온 B씨는 A씨에게 이혼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자고 요구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하며 밖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러자 B씨는 도망가는 A씨를 붙잡아 방 안으로 데려온 뒤 부엌에 있던 가위를 가지고 와 A씨의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을 긋고 A씨의 목에 겨누면서 "이혼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A씨를 힘으로 제압한 B씨는 A씨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자신도 옷을 벗은 다음 A씨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했지만 A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소리쳤다. 이에 A씨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흉기를 꺼내 들고 B씨의 복부를 한 차례 힘껏 찔렀고, 결국 B씨는 사망했다.

검찰은 A씨를 상해치사죄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쟁점은 A씨에게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형법 제21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방위는 '자기의 법익이나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벌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2항은 '정도를 초과한 과잉 방위를 한 때에는 정황을 살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씨가 자기가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한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해 B씨를 흉기로 찔렀다고 인정된다면 A씨는 처벌 받지 않을 수 있고, A씨의 행동이 스스로를 방위하기에 적절했다기보다 과다한 방위였다고 인정된다면 형이 감경되거나 면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 인정 여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A씨에게 상해치사 '유죄'를 선고했다. A씨에게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B씨로부터 먼저 폭행과 협박을 당하다 이를 피하기 위해 B씨를 칼로 찔렀다고 하더라도, B씨의 폭행과 협박의 정도에 비추어 A씨가 칼로 B씨를 찔러 즉사하게 한 행위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대법원은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살인을 하는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 판결팁= 아버지나 남편으로부터의 가정 폭력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많은 사례에서 피고인이 된 폭력 피해자들은 '정당방위'의 항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한 경우, 일관되게 그 반격을 방위행위로 거의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정당방위의 4가지 요건인 △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 침해일 것 △ 침해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을 것 △ 침해가 부당할 것 △ 상당한 이유가 있는 방위행위일 것이라는 요건 중 주로 '상당한 이유'가 충족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 '방위행위의 상당성'이라는 요건의 개념은 모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의 판단에서 가장 문제되는 부분이다.


현재까지 우리 법원은 폭력에 대응해 가해자를 피해자가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사건이 귀결되지 않도록, 미리 국가나 보호센터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 관련 조항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259조(상해치사)
①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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