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더 올려주겠다' 집단 전직 유도…"불법행위 아냐"

머니투데이 조수연 변호사(기업분쟁연구소)  | 2016.05.02 09:12

[the L] 대법 "사회적 정당성 벗어나지 않았다"…전직권유 범위 넓게 해석

전직의 자유는 헌법 15조에서 정한 직업 선택의 자유에서 도출되는 국민의 권리이다. 회사의 종업원은 이직 회사의 조건 등을 비교해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스스로 전직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종업원이 A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다른 종업원에게 A로 함께 전직할 것을 권유하는 행위는 어떨까?

◇ 총괄팀장의 집단 전직 유도…"연봉 더 많이 주겠다"

'리니지'란 게임으로 유명한 N사는 리니지 1과 2를 대히트하고, 리니지 3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 게임에만 200여명의 인원, 200여억원의 개발비 투입을 계획했다. 리니지 3팀 아래에는 디자인팀을 비롯해 프로그래밍팀, 그래픽팀 등 각 팀의 팀장과 총괄팀장이 있었다. 그러던 중 총괄팀장이 새 회사의 설립을 결심하게 됐고 각 팀의 팀장들도 함께 새로운 게임사 설립과 전직을 계획했다. 팀장들은 함께 일해온 팀원들을 모아 전직을 설득했다.

'새로 설립할 회사의 연봉은 N사의 전년 연봉보다 2자리수 이상 상승할 것임을 보장한다', '엄청난 금액의 외부 투자를 받아 새로운 게임사가 설립될 것이고, 우리 팀 전체가 신설 B사로 옮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심멤버가 없어진 N사는 휘청거릴 것' 등 B사에서 함께 좋은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팀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그간 N사와의 사정 및 퇴사의 이유도 전하고 N사의 경영상 문제점 지적도 이어졌다. 결국 리니지 3팀 소속 직원 34명이 한꺼번에 N사를 나갔고 한 달 남짓 리니지 3팀에 소속된 직원 112명 중 48명이 N사를 떠났다. 그들 중 상당수는 B사로 향했다.

이에 N사는 팀장들의 전직권유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집단 전직으로 리니지3 제작이 중단됐다면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 총괄팀장이 B사 투자유치 과정에서 리니지3의 기획서 등 중요 서류를 유출한 사실을 조사해 영업비밀유출에 대한 침해 금지 소송, 형사 고소도 했다.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3심 모두 영업비밀침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 관련 자료를 폐기하라고 판결했고, 형사 소송에서도 팀장들은 업무상 배임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집단전직에 대해서는 1, 2심의 엇갈린 판결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N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대법원 2014.3.13. 선고 2011다 17557 판결)

◇ 대법 "사회적 정당성 벗어나지 않은 정도의 전직 권유"

대법원은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총괄팀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팀장들의 동반 퇴직을 적극 유도한 데 이어 그들로 하여금 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각 팀원들의 집단 전직도 적극 유도하도록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총괄팀장이 리니지3 소속 팀원들에게 발표한 자료가 퇴직을 권유하는 내용으로는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전직 권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봤다. 그 내용이 N사에 대한 허위정보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어디까지나 전직을 결심할 경우 더 좋은 처우를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적 상당성을 벗어나지 않은 정도의 전직 권유였다는 얘기다.

전직의 자유가 보호되기 위해선 다른 종업원에게 전직을 권유하는 행위 역시 허용돼야 하지만 자유롭고 공정한 활동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 또 그 수단이나 방법이 사회적으로 상당하다고 인정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자체로 민법 750조의 불법행위로 구성되거나 민법 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인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대법원은 N사의 주장대로 전직 권유가 부당하고 위법한지 판단하기 위해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 전직권유 범위 넓게 해석한 대법


이는 1심과 정반대되는 내용의 판시다. 1심은 전직 권유 행위는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전직의 권유를 넘어 사회적 상당성을 벗어난 것으로서 불법행위가 된다고 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1.28. 선고 2008가합76346 판결)

1심이 상당성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은 △ 총괄팀장이 재직 회사 내 영향력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전직을 권유하고 △ 다수 직원의 동반 퇴직을 감행토록 했으며 △ 동반 퇴직후 새 회사에 집단 입사해 전직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게임개발 업무를 본 점 등을 고려했다.

이 사건을 놓고 보면 대법원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전직권유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직 권유 내용이 사실상 더 좋은 처우를 하겠다고 한 점, 회사 내 위치와 영향력을 이용해 그 전직 결정이 이뤄진 것이 아니고 재직 회사에 대한 평가 발언에 허위가 없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수연 머스트노우 변호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 출신으로, 기업 자문과 소송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 엘(the L)에 영업비밀과 보안문제와 관련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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