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적 선사 B사는 얼마 전 국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 회수를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신 심사기준이 강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영업기반을 착실히 닦은 덕에 흑자로 전환했고 대출 상환 능력에도 큰 문제가 없지만 금융사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국내 1, 2위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대규모 부실에 따른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에 '코리아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의 해운사 돈줄을 쥐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 때문에 튼실한 중견 선사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우려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일부 대형 선사를 빼면 대다수 해운사들은 재무상태가 건실하고 실적도 괜찮다"며 "한국 해운이 곧 망할 것처럼 매도되면서 멀쩡한 해운사들에 불똥이 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국적 선사들의 전반적인 경영 상황을 볼 때 한국 해운업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양대 국적 선사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간산업인 한국 해운업이 무너질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건부 자율협약이 개시된 현대상선(-2535억원)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선로직스(-841억원)·창명해운(512억원), 현대LNG해운(-6억원) 등 4곳을 빼면 36곳이 지난해 영업 흑자를 냈다. 국내 해운사 10곳 중 9곳은 영업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이다.
SK해운이 지난해 175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회생절차를 거쳐 하림그룹에 인수된 팬오션은 229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H라인해운(1326억원) 대한해운(860억원) 장금마리타임(831억원) 장금상선(537억원) 폴라리스쉬핑(1169억원) 고려해운(526억원) 등 대다수 중견 선사가 호실적을 기록했다.
부실이 크긴 하지만 한진해운도 지난해 36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기손익도 비슷하다. 40개 국적 선사의 지난해 합산 당기손익은 -4222억원이지만 현대상선이 6270억원의 대규모 당기손실을 낸 탓이 컸다.
국내 중견 선사들의 호실적은 글로벌 해운업황 침체에도 전문 분야 특화전략과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 덕분이다. 흥아해운과 장금상선 등은 물동량이 줄고 운임 하락폭이 큰 미주와 유럽 대신 아시아 단거리 노선을 효율적으로 공략해 성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SK해운의 경우 리스크 분산을 위해 탱커와 가스, 벌크, 벙커링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가스화물과 케미칼화 등 특수화물을 운송하는 KSS해운도 안정적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다. 장기 운송과 고정 가격계약에 따른 안정적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전년보다 35% 증가한 29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해운업계는 사정이 이런 데도 건실한 중견 선사들마저 도매금으로 '코리아 리스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코리아 리스크는 운임 및 화주 감소로 바로 이어진다. 한국 해운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화주들이 믿고 물건을 맡기지 않고 맡기더라도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장기 계약을 맺은 신용화주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때마다 물건을 맡기는 비신용화주와의 계약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이 건실한 중견 선사에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많은 조선사가 위기를 겪고 있는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 빼면 사실상 큰 걱정이 없다"며 "규모가 큰 두 국적 선사가 동시에 어려워지면서 한국 해운업에 대한 우려가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도 "양대 선사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해운업의 장기 발전 전략을 짜야 할 시점에 해운이 망할 것처럼 과장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코리아 리스크'가 건실한 국적 선사들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정부가 확실한 해운업 지원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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