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 10곳 중 9곳은 흑자인데···'코리아 리스크'에 돈줄 꽁꽁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 2016.04.29 05:34

한진·현대 '자율협약'에 중견선사 애꿎은 피해...국적선사 40곳중 36곳 흑자 "한국해운업 우려 과도"

# 국적 외항선사인 A사는 최근 선대 확충을 위해 해외 금융회사에 선박금융 파이낸싱을 타진했으나 결국 돈을 빌리지 못했다. 몇년째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데다 재무구조도 건실하지만 '한국 선사'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얼마전까지 쌍수를 들고 선박금융을 해주던 해외 금융회사는 "한국 해운사엔 당분간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 국적 선사 B사는 얼마 전 국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 회수를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신 심사기준이 강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영업기반을 착실히 닦은 덕에 흑자로 전환했고 대출 상환 능력에도 큰 문제가 없지만 금융사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국내 1, 2위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현대상선이 대규모 부실에 따른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에 '코리아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의 해운사 돈줄을 쥐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 때문에 튼실한 중견 선사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우려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일부 대형 선사를 빼면 대다수 해운사들은 재무상태가 건실하고 실적도 괜찮다"며 "한국 해운이 곧 망할 것처럼 매도되면서 멀쩡한 해운사들에 불똥이 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국적 선사들의 전반적인 경영 상황을 볼 때 한국 해운업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양대 국적 선사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간산업인 한국 해운업이 무너질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28일 머니투데이가 매출액 500억원 이상 40개 국적 외항선사의 지난해 경영 실적(연결기준)을 분석한 결과 이들 40개 해운사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1조2295억원에 달했다.
조건부 자율협약이 개시된 현대상선(-2535억원)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선로직스(-841억원)·창명해운(512억원), 현대LNG해운(-6억원) 등 4곳을 빼면 36곳이 지난해 영업 흑자를 냈다. 국내 해운사 10곳 중 9곳은 영업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이다.

SK해운이 지난해 175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회생절차를 거쳐 하림그룹에 인수된 팬오션은 229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H라인해운(1326억원) 대한해운(860억원) 장금마리타임(831억원) 장금상선(537억원) 폴라리스쉬핑(1169억원) 고려해운(526억원) 등 대다수 중견 선사가 호실적을 기록했다.

부실이 크긴 하지만 한진해운도 지난해 36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기손익도 비슷하다. 40개 국적 선사의 지난해 합산 당기손익은 -4222억원이지만 현대상선이 6270억원의 대규모 당기손실을 낸 탓이 컸다.


국내 중견 선사들의 호실적은 글로벌 해운업황 침체에도 전문 분야 특화전략과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 덕분이다. 흥아해운과 장금상선 등은 물동량이 줄고 운임 하락폭이 큰 미주와 유럽 대신 아시아 단거리 노선을 효율적으로 공략해 성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SK해운의 경우 리스크 분산을 위해 탱커와 가스, 벌크, 벙커링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가스화물과 케미칼화 등 특수화물을 운송하는 KSS해운도 안정적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다. 장기 운송과 고정 가격계약에 따른 안정적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전년보다 35% 증가한 29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해운업계는 사정이 이런 데도 건실한 중견 선사들마저 도매금으로 '코리아 리스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코리아 리스크는 운임 및 화주 감소로 바로 이어진다. 한국 해운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화주들이 믿고 물건을 맡기지 않고 맡기더라도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장기 계약을 맺은 신용화주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때마다 물건을 맡기는 비신용화주와의 계약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이 건실한 중견 선사에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많은 조선사가 위기를 겪고 있는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 빼면 사실상 큰 걱정이 없다"며 "규모가 큰 두 국적 선사가 동시에 어려워지면서 한국 해운업에 대한 우려가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도 "양대 선사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해운업의 장기 발전 전략을 짜야 할 시점에 해운이 망할 것처럼 과장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코리아 리스크'가 건실한 국적 선사들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정부가 확실한 해운업 지원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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