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조작했지?" 단속경찰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들

머니투데이 한보경 기자 | 2016.04.27 04:18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계에 근무하는 A경장은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조사한 교통사고 관련자가 청문감사관실에 민원을 넣은 것. 민원인은 A경사에게 "“(미국드라마) CSI 안 봤어? 거기서는 CCTV(폐쇄회로화면) 다 조작하고 그러던데. 나는 이렇게 빨리 달리지 않았어. 경찰이 조작한 거지?"라며 막무가내였다. A경장은 당시 조사 자료를 챙겨 감사관실에 제출, 문제가 없었던 것을 증명했지만 한동안 감사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일선 경찰관들이 적잖은 무고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단속 과정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경찰관을 곤경에 빠뜨리는 민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아니면 그만'이라며 분풀이 성격으로 민원·진정을 넣어도 민원인들에겐 별다른 불이익이 없는 반면 경찰관들로선 일일이 소명해야 하고, 자칫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 공권력 집행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고충이다.

26일 경찰·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민원인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교통사고 조사관을 비롯해 성매매·노래방·유흥주점 단속 경찰관들이 최근 악성 민원에 주로 노출되는 분야로 꼽힌다.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한모 경장(30)은 지난해 9월 모텔에서 단속한 성매매 여성 김모씨(31)로부터 강도상해와 성매매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김씨는 한 경장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성매매 단속 과정에서) 한 경장이 나를 밀치고 달러(약 400만원 상당)가 든 지갑을 빼앗았으며, 한 경장과 동료 경찰관들이 성매매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고소 내용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서울북부지검은 한 달여에 걸친 진상 파악 결과 김씨의 고소 내용을 "한 경장에 대한 악의적인 음해"로 결론냈다. 결국 김씨는 무고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다행히 무고 사실이 밝혀졌지만, 한 경장이 받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그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피해 경찰들에 따르면, 악성 민원인들의 주요 수법은 △경찰 청문감사관 상대 민원 △인권위원회 진정 △청와대 신문고 투서 등이다. 여러 차례 악성민원에 시달렸다는 일선 경찰서의 B경장은 "근무 날짜와 시간을 파악해 매번 유선전화로 욕하는 것은 물론 만취 상태로 경찰서 앞에 찾아와 '서장 나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경찰서 형사과 또는 수사과에 "단속 과정에서 부당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경우도 많다. 감찰 결과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고 결론이 나오더라도 "일단 감찰에 불려다니는 것 자체만으로 위축되고, 시간을 빼앗겨 업무적으로도 지장이 크다"는 게 B경장의 설명이다.

악성 민원이 '민원'으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경찰서 황산 테러가 한 예다. 전모씨(38·여)는 2012년 '헤어진 남자친구가 연락해 와 불안하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당시만 해도 담당 수사관이었던 박모 경사(44)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박 경사가 부서를 옮기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전씨는 끊임없이 연락해왔고, 결국 "왜 전화를 안 받냐"며 황산을 뿌렸다. 박 경사는 얼굴과 목, 가슴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단속 경찰관에게 앙심을 품어 고소하면 무고 혐의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되고, 더욱이 악성 민원에 따른 경찰력의 낭비는 다른 민원인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민원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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