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 칼럼] KB금융과 CEO운(運)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16.04.18 05:22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은 노력일까, 아니면 운일까. 말콤 글래드웰은 명저 ‘아웃라이어’에서 누구든 1만시간의 노력을 하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글래드웰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 중 상당수의 생일이 1~4월이란 점을 들어 운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생일이 빠른 아이가 체격이나 성숙도에서 앞서기 때문에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위대한 기업’ 시리즈로 유명한 짐 콜린스는 기업 경영에서 운과 노력을 설명하면서 글래드웰의 주장을 반박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 중 다수의 생일이 상반기인 점은 맞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 중에는 절반 이상이 하반기에 태어난 사람이란 주장이다. 콜린스는 운명이 아니라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노력이라고 강조하는 콜린스조차 ‘사람 운’을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콜린스는 사람이 경험하는 운 중 최고는 좋은 친구, 올바른 멘토, 훌륭한 리더를 만나는 ‘사람 운’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뛰어난 리더, 훌륭한 CEO(최고경영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KB금융그룹은 지독하게 CEO 운이 없었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직후 김정태라는 뛰어난 CEO를 만나 몇 년 동안 리딩뱅크가 됐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후에는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강정원 황영기 어윤대 임영록 이건호 등 하나같이 개인적으론 뛰어나고 강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조직의 리더로선 크게 부족했다. 게다가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문책을 받아 중도퇴진하고 말았다.

KB금융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과 대조적으로 경쟁은행들의 CEO 운은 괜찮았다. 신한금융그룹은 ‘신한사태’에도 불구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한동우라는 균형 잡힌 CEO를 만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선두자리를 확고하게 지켰다. 하나금융도 김정태 회장의 조기 통합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금융은 민영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에서도 이종휘 이순우 이광구로 이어지는 안정된 경영체제로 자기 몫은 확실히 챙기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조준희 행장을 이어 현재 권선주 행장이 한눈 팔지 않고 내실경영을 잘하고 있다.

KB금융이 완벽하게 2류 금융회사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씻어낸 사람은 윤종규 회장이다. 다음달이면 3년 초임의 반환점을 도는 윤 회장은 취임 1년반 만에 KB금융을 부활시켰다. 취임과 동시에 KB손해보험 인수를 마무리한 데 이어 현대증권까지 사들임으로써 KB금융의 최대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증권부문을 강화하고 나섰다.


현대증권 인수는 KB금융으로선 여러 의미가 있다. 당장은 과거 사외이사들과의 갈등을 배경으로 고질병처럼 나타난 ‘M&A(인수·합병) 실패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다. 또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ML)와 같은 은행과 증권이 결합해 성공한 모델을 KB금융도 실험해볼 수 있게 됐다. 금융그룹간 외형경쟁에서도 KB금융은 선두인 신한금융에 버금가는 자산규모를 갖게 됐다.

윤 회장은 보험사와 증권사 인수에 이어 서울 여의도의 옛 대한지적공사 부지를 매입함으로써 KB금융의 오랜 숙원인 통합사옥 건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인생은 각자의 노력이란 씨줄과 운 또는 시대 상황이란 날줄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한편의 작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과 뛰어난 CEO의 리더십이 어우러질 때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다. KB금융은 10여년 만에 한 가지 조건은 충족했다. 남은 건 KB맨들의 치열한 노력이다. 윤종규 회장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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