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프리즘]아이폰 잠금해제 논란이 남긴 것

머니투데이 성연광 부장 | 2016.04.12 15:44
국가사회시스템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프라이버시쯤은 침해받아도 상관없을까. 반대로 전체 다수의 권익이 위협받는 상황이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할까. 생각할수록 풀기 어려운 딜레마다. 둘 다 정보화 시대에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인 까닭이다.

최근 이 두 가치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미국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아이폰 암호해제' 공방이 대표적이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디지털 사회의 프라이버시를 둘러싼 쟁점 현안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아이폰 암호해제 공방은 현지 테러 용의자의 아이폰 정보를 볼 수 있도록 백도어(뒷문)를 제작해달라는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요구를 애플이 거절하면서 시작됐다. 미 법무부가 소송까지 제기하며 압박했지만 애플은 "아이폰 전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미 수사당국의 요구를 거절했다. 미 FBI는 외부 보안업체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의 아이폰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논란은 되레 증폭되고 있다.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에서 미 법무부와 애플 양측이 '아이폰 잠금해제' 관련 불리한 재판 결과에 각각 항고하면서 법정 소송이 재개됐다. 미국 의회에서는 암호반대법안을 제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은 법원 명령을 받을 경우, 서비스 기업이 암호화된 이용자 데이터를 복호화해 법원에 내용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핵심 쟁점은 서비스 기업이 정보관리권한을 이용자에게 완전히 넘기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다.

FBI가 외부 업체의 도움으로 해킹에 성공한 아이폰은 출시된 지 한참 지난 구형 모델(아이폰 5c)이다. 애플은 아이폰5s버전부터 터치ID를 비롯한 운영체제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터치 ID를 적용하면 애플이라 하더라도 이용자들의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이른바 사용자만이 암호화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종단간암호화(E2E) 방식이다. 최근 왓츠앱 등 메신저 업계도 서비스에 E2E 기술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IT기업들이 이처럼 사용자들에게 정보관리권한을 넘기기 시작한 건 2013년 스노든 폭로 사태 이후부터다. 미국 정보기관이 자국 내 IT기업들의 서버에 쌓인 이메일과 데이터를 활용해 전 세계 이용자 정보를 감시하고 있다는 스노든의 폭로는 충격적이었으며, 전세계 이용자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마트폰 혁명 이후 일반인들의 거의 모든 일상정보들이 사이버 공간에 저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주소록, 일정관리, 메일, 메신저 등이 모바일과 클라우드 서버에서 이뤄지면서 스마트폰 하나만 들춰내면 수년간 활동정보와 일상정보, 위치 동선 등을 통째로 파악할 수 있다. 글로벌 이용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온 IT기업 입장에선 이용자들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였던 셈.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보관리 권한을 아예 이용자들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국가 수사기관들은 이같은 IT기업들의 행보에 당혹해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 및 증거 수집이 불가능해질 경우, 모든 테러 방지 및 범죄 예방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논리다. IT기업들의 E2E 기술 도입 추세에 맞서 주요 서방국들이 암호기술 자제를 요구한데 이어 암호반대법안까지 제정하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미국 사회 내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만약 암호반대법안이 통과된다면 애플은 법원 요청이 있을 경우, 사용자 정보를 제출할 수 있도록 '백도어'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판이다. 백도어를 남기는 순간 사이버 테러범들과 '자국 이익'만을 노린 또 다른 국가 정보기관들에게 탈취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는 자칫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붕괴되고, 결과적으로 디지털 기술·서비스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외부 해킹세력이 아닌 국가권력이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를 위협하는 새로운 주체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우리 시대의 자회상이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국내에서도 해외 메신저 서비스로 망명하는 사태가 한동안 줄을 이었다. 최근에는 통신사들이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통신자료를 두고도 논란이 한창이다. '공공 안녕'과 '프라이버시' 양대 가치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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