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솔직히 좀 ‘구라’가 심하죠. 묵직한 알맹이가 있다기보다 말풍선을 그럴듯하게 띄우는 풍경이 많다고 할까요? 그러나 과학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원칙과 지식을 최소한 담보해준다고 볼 수 있거든요.”
연세대 국문학과를 나와 신문방송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딴 소위 ‘인문학 박사’ 개그맨 이윤석(44)은 ‘과학책 애호가’다. 책 중독증이라고 불릴 만큼 늘 책을 가까이 하는 그는 식사 중에도 책을 보다 아내한테 잔소리 듣기 일쑤다.
1994년 개그맨이 되기 전엔 철학이나 문학, 사회과학 중심의 인문학을 즐겼고, 개그맨 이후엔 과학책에 빠졌다. 인문학을 인생의 지렛대로 삼을 법한 그가 과학책에, 그것도 20년 넘게 애착을 보여온 이유가 무엇일까.
“개그맨이 되고 나서 한창 바쁠 때, 우연히 이병훈 교수의 ‘유전자들의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제 태생 자체가 존재론적 의문에 호기심이 많은 기질이었는데, 그전의 철학이나 종교 등 인문학으로는 해결점을 찾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나름의 진리를 찾았다고 할까요? 제 존재 이유는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는 본질적 해답도 거기서 얻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새로운 각도로 저를 보는 눈이 생겼어요.”
‘이기적 유전자’ 같은 리처드 도킨스 류의 생물학책으로 시작한 과학책 읽기는 우주의 신비, 뇌과학으로 점점 범위가 확대됐다.
“타고난 성향이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너무 부질없어 보였어요. 정치는 늘 싸우기만 하고, 작은 것에 목숨을 걸거나 서로 헐뜯고 하는 모습을 보니, 허무함이 많이 쌓이더라고요.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규칙에 대한 탐닉도 생겼고요. 우주에 관한 책만 봐도 조금 깊은 세상의 이면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비롭고 기적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우리가 싸우는 게 시간 낭비 같거든요. 인문학이 주는 구원보다 과학책에서 의식 있는 존재의 탄생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구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윤석도 학창 시절엔 여느 학생처럼 과학책을 멀리했다. 과학이 세상의 문제를 푸는 지혜의 학문이 아닌, 딱딱하고 암기하는 지식의 과목으로 다가왔기 때문. 그는 “어릴 때부터 굴절과 반사 같은 난해한 용어를 재미없이 가르칠 게 아니라, 화산 폭발 볼거리 등 찾아가는 방식을 통해 방법론을 확대하면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책을 너무 늦게 만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보다 더 먼저 만나길 바라요. 소설은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지어낸 얘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덜 신비롭죠. 과학은 그러나 소설만큼 황당무계한 얘기들이 많지만, 모두가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 토대여서 더 대단하고 신비로워요.”
머니투데이가 현재 진행하는 '과학책을 읽읍시다' 코너와 1000만 원 고료 '과학문학 공모전’에 대해 이윤석은 '짝짝짝'이란 박수로 관심을 대신했다. 그는 "이 기회를 빌려 많은 이들이 과학책에 관심을 높여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학책을 17년간 읽었을 때 즈음인 2011년 이윤석은 ‘웃음의 과학’이라는 과학책을 펴냈다. 웃음을 소재로 한 과학책이 국내에 없다는 걸 알고, 그가 집대성해보겠다고 달려든 작업이었다. “혼자 과학책을 읽고 정리해놓은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련 책이 있나 찾아보니, 없어서 ‘이건 내게 주어진 소명이다’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죠.”
과학책은 단순히 그의 존재론적 호기심을 푸는 열쇠로만 다가온 건 아니었다. 방송 활동을 쳇바퀴 돌 듯하면서 느끼는 불안과 허무를 지탱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이윤석은 “내게 과학은 종교까지는 아니지만, 최대한 확신할 수 있는 지식”이라며 “다른 이에게 읽으라고 강요를 하지 못하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사실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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