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구, 이 결정장애야.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어."
점심 뭐 먹고 싶냐는 선배의 말에 '아무거나'를 외쳤다가 결국 한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과 짬뽕, 후라이드와 양념치킨, 족발과 보쌈 중에 항상 고민입니다. 그래서 '반반'이라는 신의 한수가 생겼다지만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 노는 것, 사는 것 모든게 고민입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대신 선택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SNS에 올라오는 걸 보니 '결정장애'를 겪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봅니다. "아기 유모차 색깔 골라달라", "앞머리 자를까 말까", "감자튀김은 매운 맛? 달콤한 맛?", "내일 뭐 입고 출근할까", "결혼식에 무슨 드레스 입을까" 등 사진까지 올려가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대신 선택해주는 '앱'도 십여가지나 됩니다. 하지만 결정장애족들은 또 어떤 앱을 깔아야할지 몰라 한동안 멘붕입니다.
정보가 많아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선택의 양도 대폭 늘었습니다. 커피 한잔을 시키면서도 원두는 어떤 종류, 핫-아이스, 종이컵-머그컵, 스몰-레귤러-톨 등 종업원의 질문에 바로바로 답해야 합니다.
"계산대에 와서 카드로 할지 현금으로 할지 상품권으로 계산할지 고민 좀 하지 말라"는 누리꾼도 눈에 띄었습니다.
선택장애 또는 결정장애를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 햄릿이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착안한 신조어로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장 배경, 정보 홍수의 시대가 원인이 됩니다.
결정장애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수강신청을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본다는 대학생이나 회사에 결근하는 사유를 부모가 대신 전화해서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문제는 사소한 신변 사항을 넘어 인생의 중요한 순간까지 남들의 말에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198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젊은 층을 '결정장애 세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글쎄", "아마도", "그런 것 같아"와 같은 말로 답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으며 잘 정착하지도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들에게 시시콜콜 물어보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잘못된 선택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다시 도전도 해봐야 합니다. 내가 고른 식당이 맛이 없다면 "우리 여기 다시는 오지 말자"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말 그대로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부장님이 물어보시기 전에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힘주어'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일요일에 출근도 했는데….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