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둑두는 시대에 우주선·로봇 나와야 SF소설일까?"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 2016.03.23 03:05

'타워', '첫숨' 배명훈…'옆집의 영희씨' 정소연 작가 대담…"SF소설은 사람 이야기"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작가 정소연(왼쪽)과 배명훈 작가가 만나 SF소설에 대해 가감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한국SF의 재기발랄한 레전드'와 '한국SF의 빛나는 감수성'. 소설가 김중혁은 작가 배명훈과 정소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머니투데이가 ‘제1회 SF 및 과학스릴러 중·단편 신인소설 공모전’를 시작하면서 배 작가와 정 작가의 대담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아직도 “SF소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아니야?”, “공상과학이라니, 생뚱맞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두 작가는 “SF·과학소설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는 현재 SF 장르를 더 이상 ‘비주류’ 취급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말 ‘스페이스 콜로니’(우주인공섬)을 다룬 소설 ‘첫숨’을 펴낸 배명훈 작가는 대학 재학 중이던 2004년 ‘테러리스트’로 대학문학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소설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2005년 ‘스마트D’로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됐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꾸준히 작품을 연재해왔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2009년 펴낸 연작소설집 ‘타워’다. 이듬해에는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해 이른바 ‘주류 문단’과 ‘SF 소설계’를 오가는 인물로 꼽힌다.

정소연 작가도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해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SF 단편집인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백만 광년의 고독’, ‘아빠의 우주여행’ 등에 작품을 실었으며 지난해 첫 소설집 ‘옆집의 영희씨’를 펴냈다. 옮긴 작품으로는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다른 늑대도 있다’ 등이 있다.

SF소설 '타워', '첫숨'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배명훈은 "SF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한다"고 말한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SF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배명훈=국제정치학 전공이다. ‘외교정책결정론’ 같은 수업을 듣다 보면 미국 대통령쯤 되면 엄청나게 중요할 것 같은데 막상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존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관점을 세뇌당한 상태에서 취미가 ‘소설쓰기’라 쓰다 보니 한국 문단에서 생각하는 ‘이야기’는 안되더라. 꼭 ‘SF 마니아’로 시작한 것은 아닌데 아마 문단에서 (제 소설을) 먼저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 같다. (주류) 문학계에서 보면 제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제가 ‘주류’라고 생각하는 걸 하고 있다.

▶정소연= SF가 재밌었다. 일반문단 소설을 안 읽은 건 아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뭔가를 쓰게 된다면 제일 재밌게, 또 많이 읽은 SF를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쓸 때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를 받는 지점이 있는가

▶배=공부하거나 영화 보는 등 일상의 경험에 내 이야기도 들어가고 하는 것 같다. (소설 '테러리스트'의 경우) 공부하다가 인공위성을 요격하는 무기, 또 그 무기를 요격하는 무기 등 관련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거나 어느 정도는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 이야기다. 나는 SF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SF라고 보였나 보다. ‘SF작가’라는 자의식이 나중에 생긴 경우다.

▶정=사실 (원고) 청탁이 오는 시점에 그때 그때 다르다. (웃음) 다른 사람에게 내 고민을 SF 형태로 나타내는 것 같다. 제가 쓴 단편 중에 ‘개화’란 단편이 있다. 와이파이 등 정보망을 통제하는 소설이다. 독자를 상대로 한 단편집을 만드는 와중에 마침 구치소에 있는 친구가 있어서 접견을 갔다. 그런데 구치소를 인터넷 지도에 검색했는데 안 나오더라. 막상 가면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현재 존재하는 경험인데 인터넷에는 안 나오는 거다. “거기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소설은 “검색 불가능한 것은 존재 불가능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SF도 결국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SF 장르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소재’에 대한 것이다. 로봇 같은 것이 막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그런 소재는 쓰지 말고 현대 과학기술에 딱 맞는 것만 쓰고 과학자 해설을 쓰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가 정소연은 "SF소설의 특징은 '논리'와 '합리성'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SF 장르만의 특성이 있다면. SF를 흔히 ‘공상과학’ 소설로 번역하다 보니 판타지 소설과 헷갈리는 이도 많다.

▶정=(혹자는) SF와 판타지 소설을 묶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미스터리 소설까지 합쳐서 장르문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장르 간) 소재의 친숙성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독자가 겹쳐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SF의 특징은 ‘논리’와 ‘합리성’이다. 합리성이 개인의 합리성일 수 있고 세계나 행위의 합리성일 수도 있다. 있을 법한 일이 전개되는 것이다. 제 생각에 SF는 거기에 큰 가치를 둔다. SF는 작게는 등장인물, 설정, 세계관, 우주 등에 -존재 가부와 별개로- 완성된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고 생각한다.

▶배=예를 들어 판타지소설이라면 눈앞에 드래곤이 나타나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판타지 영화에서 드래곤이 나오면 그냥 ‘두근’하는 관객들이 있다. 그런데 SF에서는 그 부분을 설명하는데 분량을 꽤 많이 할애한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재미의 요소가 된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그 부분일 것 같다. 칼 세이건의 ‘콘택트’를 보면 앞에 100여 페이지가 과학자들이 전파천문학에 관한 내용이다. 너무 재미가 없는데 또 그 부분을 엄청나게 좋아하기도 하니. 그런 것의 미학이 있어요.

▶정=SF는 현대문학으로서의 탄생일이 정해져 있는 유일한 장르다. 1926년 미국에서 창간된 ‘어메이징스토리즈’ 잡지로 시작됐다. 보다 진보적이고, 보다 교육적인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된 장르다.

-두 분의 소설을 보면 누구보다 인간의 존재와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정 작가 소설의 경우 소수자의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휴머니즘’이 녹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배=SF소설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SF면 이럴 것 같다”는 전제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다.

▶정= SF, 과학소설은 우리가 언제 다른 행성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외계인을 만날지를 가르쳐 주는 장르가 아니다. 배 작가님과 생각은 조금 다른데 SF 자체가 스펙트럼이 넓어서 3D 같은 것도 있고 SF 포르노도 있고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페미니즘 SF, 환경 SF, 반전 SF 등의 큰 흐름도 있다. SF가 휴머니즘, 인간에 대한 지향성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게 많은 것은 1960년대 ‘뉴웨이브’란 흐름 때문이다. 당시 인류가 달에 가는 등 큰 발전도 있고,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성인이 되고, 고등교육이 향상되고 하면서 기존의 소설이 아닌 다른 형태로 이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SF’라는 형태로 가장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나온 것 같다.


정소연 작가는 인터뷰 사이사이 SF, 과학소설에 대해 정의를 내린 명언을 찾아 보이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SF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이다. 스터전은 “과학소설은 과학적인 요소가 없었다면 애당초 없었을 인간의 문제와 (그에 대한) 인간의 답을 둘러싼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평론가 다르코 수빈은 “필요충분조건이 소격과 인지의 존재 및 상호작용이고 주요한 공식적 장치가 작가의 경험 환경과 상이한 상상적 틀인 문학장르”라는 정의를 내렸다. '과학소설백과사전'을 펴낸 존 클루트는 “과학소설은 우리가 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우리의 삶과 우리 행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사색한다”고 했다.

-SF소설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린다면. 또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SF소설’은 무엇인가.

▶정=이전 인터뷰에서 “SF소설은 ‘지금, 여기’에 대해 가장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라고 했는데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SF는 ‘지금, 여기’에서 출발하는 장르다.

▶배=가장 중요한 건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거다.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저는 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정소연, 배명훈 작가는 '제1회 머니투데이 SF 및 과학스릴러 중단편 소설공모전' 응모자에게 "SF소설 10권은 읽고 응모를 하면 좋을 것"이란 조언을 건넸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한국 SF소설의 현재를 진단해달라.

▶배=대중화는 아직은 좀 걸릴 것 같다. 장벽이 있다. ‘알파고’ 대결 이후 약간 배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을 느꼈다. 알파고란 인공지능의 대결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데 누가 대결 전에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썼으면 -이미 누군가 썼을지도 모른다-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까 싶다. 작가로서 풀기 어려운 장벽이다. 편집자도 (SF소설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니까 당장 편집자도 설득해야 한다. 독자도 직접 받아들이지 않고 은유로 받아들이니까 어려운 부분이 있다. 출판계에서도 책 소개했을 때 모든 분들이 어려워하는데 알파고 나오고 나서는 너무 쉽게 받아들이잖나.

또 (알파고 이후에는)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인류의 대표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이라는 거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데 그 부분도 사실 과제였다. SF소설에 한국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어색해 한다. 지금은 줄어들고는 있지만, SF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건데 우리한테 오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다.

“광화문에 UFO를 띄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질문에 아직 낯설어하는 것 같다. 예전 사고방식이다. 가끔 미국사람들이 쓰는 스토리가 부러운 게 그런 거다. 동네 이야기가 곧 글로벌한 이야기가 되잖나. 한국사람들의 세계가 어떤 이유에선지 좁혀져 있는데 아직 그 안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현대 한국사람들의 삶의 범위는 그거보다 훨씬 넓은데도 말이다.

▶정=‘태평성대’다. 하하. 좋았던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자체가 신생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배 작가님이 말했듯- ‘주변성’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문학이 그나마 극복하기 쉬운 장르임에도 우리나라는 너무 늦게 근현대에 진입했다. 우리 생각의 크기가 작은 것 같다. 문학 장르에서도 그걸 넓히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배=(생각을 넓히는 것은) 소설에서 하기가 훨씬 쉬운데 오히려 소설이 더 작은 것 같다. 실제 한국 사람들의 삶은 그 정도로 작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세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일제 시대 때의 소설 세계보다 작다. 이광수 소설을 보면 여의도 비행장에서 비행기 탄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 같으면 그걸 다루는 작가는 분명 “검색대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더 보수적으로 쓸 것 같다. (보통) 거대담론에 짓눌린 미시적인 소설 발굴해낸다고 하는데 개인의 고통이나 개인적인 운명에 머물러 있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문학에) 보수화에 기여하지 않나 생각한다.

▶정= 알파고도 사실 그동안 이뤄져 왔던 수많은 ‘배타 테스팅’과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다. 마치 아주 미래적인 일이 다가온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 자체가 오히려 “우리의 현재가 얼마나 앞으로 나와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이벤트가 있어야 인지하는 세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현재 일어날 일이 일어났는데 현재보다 더 퇴행한 세계관을 가진 한국사회에서 오해하면서 받아들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그래비티’도 SF영화가 아닌 현재의 재난영화라고 생각했다. 1940년대에 나왔을 법한 SF소설이 시각화된 것일 뿐인데 퇴행적 세계관에서 머물다 보니 미래가 현재로 온 것처럼 느끼게 오인한 것 같다.

1회 과학문학 공모전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 5명이 이번 공모전에 바람을 보내왔다.


-머니투데이가 ‘제1회 SF 및 과학스릴러 중단편 소설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전에 대해 혹은 응모하려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배=지속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이나 창작력을 지닌 사람은 일정 정도 있다. 다만 이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고정된 지면이 있거나 공모전 등을 통해 활로가 트이느냐에 따라 (창작 능력을) 개발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인 등용문이 안정되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보장된다고 하면 이 분야에도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지만- SF소설 창작하실 분들이 쌓여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인적 네트워크 통해 ‘알음알음’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데뷔할 경로가 막힌 지 몇 년 됐다. 저 같은 작가가 또 있는데도 데뷔를 못 하고 있지않을까. 저도 정부가 주최한 ‘과학기술창작문예’를 통해 데뷔했는데 3회까지 하고 사라졌다.

▶정= 응모하시는 분들이 SF소설 10권은 읽고 응모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현실과 동떨어진 건 상관은 없다. ‘지금, 여기’와 멀리 가냐 가깝게 가냐가 문제가 아니다. SF가 추구하는 경이감과 과학적인 합리성을 잘 알고 출품했으면 좋겠다.

▶배=본인은 되게 참신하다고 생각하는데 분명 10권 중에 비슷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책과 내용이 겹치는 걸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게 너무 낮은 수준에서 만나게 되면 민망해지지 않겠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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