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다산교'를 '다산(茶山)교'나 '차뫼다리'로…

머니투데이 홍찬선 CMU유닛장 | 2016.03.17 10:02

[홍찬선의 세상읽기] 비우당교 고산자교 수표교 모전교… 청계천 다리는 불가사의(不可思議)

서울 청계천에는 ‘다산교’라는 다리가 있다. 모두 22개에 이르는 청계천 다리 중 청계천광장에서부터 16번째 다리다. 중구 흥인동 1번지와 종로구 창신제1동 401번지를 잇고 있다.

그런데 이 다리가 무슨 뜻인지, 왜 그런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인근에 아기를 많이 낳은 다산(多産)자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근처에 산이 많아서 붙인 것인지(多山), 아니면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의 호인 茶山를 따서 지은 것인지…

검색을 해서 찾아보면 다산교는 ‘다산 정약용의 호를 따서 붙인 다산로로 이어지는 다리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돼 있다. 정약용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리 이름의 표기를 지금처럼 ‘다산교’가 아니라 ‘다산(茶山)교’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검색해 보는 수고를 아낄 수 있는데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산교에서 한강 쪽으로 더 가다 보면 ‘비우당교’를 만난다. 동대문구 신설동 100번지와 성동구 상왕십리동 12번지를 잇는 청계천 19번 째 다리이다. ‘다산교’는 그나마 ‘혹시 다산 정약용이 아닐까?’하는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비우당교’는 당최 어떤 뜻인지 상상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검색을 해보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종로구 숭인동에 조선 초기 정승을 지낸 유관(柳寬)이 장마철에 일산(日傘)을 펴고 비를 근근이 가리며 살 정도로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비우당(庇雨堂)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살려 다리 이름을 비우당교라고 하였다”고. 비우당이란 ‘비를 덮는(피하는) 집’이란 뜻이다.

청계천 마지막 22번 째 다리인 ‘고산자교’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상상력의 한계를 탓하며 또 검색할 수밖에 없다. “고산자교;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와 성동구 마장동 470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이 다리를 지나는 가로명이 1984년 조선시대 지도 제작에 힘써 를 만든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호를 따서 고산자로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비우당(庇雨堂)교’와 ‘고산자(古山子)교’라고 표기해 놓았으면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을 ‘비우당교’와 ‘고산자교’라고만 내놓으니 뜻을 전혀 알기 어려운 기호가 되고 만 것이다.


청계천을 걷다 보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리 이름은 더 수두룩하다. 14번째 다리 이름은 오간수교다. ‘오간수교’가 무슨 뜻일까. 그 누구도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간수교를 ‘오간수(五間水)교’라고 표기해 놓으면 무언가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가(물론 한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며, 한자 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 즉 동대문에서 을지로5가로 가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이 다리는 다섯 칸의 수문을 설치했다고 하여 오간수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한성(漢城, 이것도 韓城으로 바꿔야 한다)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된 5개의 구멍을 만들어 홍예교라고도 하였다.


‘수표교’도 마찬가지다. 수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앞수표의 그 수표로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수표교의 수표는 물의 수량을 잰다는 뜻의 水標를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수표교는 청계천에 흐르는 수량을 측정하는 다리로 다리라는 뜻이다. 수표교 돌기둥에 경(庚) 진(辰) 지(地) 평(平)이란 표시를 해서 물의 깊이를 재었다.

수표교를 ‘수표(水標)교’로 표기하면 다리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표(水標)교’는 수표교가 된 것도 안타까운데, 원래 청계천 2가에 있었던 수표교는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이전해 지금도 그곳에 있다. 지금 청계천에 있는 수표교는 2003년 6월 청계천을 복원할 때 원래의 수표교를 본 따 만든 새로운 ‘가짜 수표교’이다.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인 모전교는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이 형성되어 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 과일 팔던 毛廛은 아련히 사라지고(실제 공간뿐만 아니라 인식에서도) 무슨 뜻인지 상상하기 어려운 모전만 남아 있다.

11번째 마전교도 마찬가지다. 종로구 종로5가와 을지로(乙支路) 사이 청계천(淸溪川)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리, 마전교는 조선 태종(太宗) 때는 창선방교(彰善坊橋), 성종(成宗) 때부터는 태평교(太平橋)로 불리다가 영조(英祖) 때, 다리 옆 광장에서 말을 매매하면서 ‘말 시장’이란 뜻의 馬廛으로 바뀌었다. ‘마전(馬廛)교’라고 표기해놓으면 그런 역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 다리 가운데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것도 있다.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나래교 버들다리 맑은내다리 두물다리 등이 그것이다. 우리말로 된 다리 이름은 한번 보면 무슨 뜻인지 그냥 알 수 있다. 우리말과 글과 대상이 일치하기 때문이다(나래교는 이상하다.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이미지화해서 다리를 만들어 이름도 나래라는 예쁜 이름을 달았다. 그런데 나래다리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여기에 ‘교’를 붙였을까? 수수께끼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자로 된 다리 이름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한글로만 표기해 놓으면 이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말과 글과 대상과 뜻이 따로따로 놀기 때문이다. 한글 사랑은 淸溪川을 ‘맑은 내’라고 바꿔 부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찾고 만들어 내는 일이지, 淸溪川을 청계천이라고 표기하고 청계천은 한글이라고 우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산교’를 ‘다산(茶山)교’로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차뫼다리’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차뫼다리’하면 茶山橋라는 의미를 연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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