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불계승을 바라보는 인간적이고 비관적인 견해

머니투데이 이승형 건설부동산부 부장 | 2016.03.09 16:37

[이승형의 세상만사]

"난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그 모든 기억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마침내 죽음 앞에 선 인조인간 로이 배티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유언은 인류가 신세기에 맞이하게 될 끔찍한 저주의 전조(前兆)처럼 울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마지막 장면은 엄숙하고 처연하다. 끊임없는 산성비와 반젤리스의 음악'티어즈 인 레인(Tears In Rain)'이 함께 흐르는 가운데 로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죽는다.

이미 고전이 돼 버린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후 로봇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거의 모든 영화의 문법이 됐다. 멀리는 '터미네이터'가 그러했고, 가깝게는 '엑스마키나'가 그랬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을 공격하다 인간에 의해 죽는 혹은 인간을 죽이는 인조인간의 운명.

영화 '블레이드러너'. 201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인조인간의 탄생으로 빚어지는 인간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덧 이 모든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을 닮은 '피조물'의 세계는 우리가 갖춰야 할 윤리의식의 공유와 제도적 준비의 속도를 앞서면서 우리 발치에 이미 도착해 있다.

일정한 패턴의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이나 의료용 로봇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인간에게 꽤나 웃기는 농담을 건네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맛있는 라면을 끓이거나, 기자보다 기사를 더 잘 쓰는 로봇이 있다.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인간의 정서에 다가가는 감정 로봇도 등장했다. 귀엽고 따뜻한 이미지의 이들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 '위안'의 행위가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든 진심에 의한 것이든 고독한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무인자동차'들로만 가득 한 도로를 보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다. 수많은 버스, 택시, 택배기사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손해보험사들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선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앞으로 5년안에 일자리 500만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머지 않아 우리는 기계와 취업 경쟁을 해야 하고, 로봇을 상사로 모시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라 인간이 일을 하는 시대.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전세계 네트워크를 장악해 큰 돈을 번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같은 대 자본가와 일부 엘리트 과학자들은 열심히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해 "괜찮을 것(It'll be OK)"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효율성'과 '편의성'의 잣대로 보는 그들에겐 돈의 논리가 더 가깝다. 이들과 이들이 만든 로봇 중에서 누가 더 인간적일까.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울 것인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것이 두 가지 더 남았다. 하나는 군수업자들이 만드는 전쟁용 로봇이고, 또 하나는 포르노업자들이 만드는 섹스용 로봇이다. 두 가지로 인해 인류는 소행성 충돌보다 더 위험한 멸종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서 충격적인 불계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의 심각한 표정을 본다. 그리스 문자의 첫 단어인 '알파'는 모든 것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우리는 어렸을 적 상상도 못했던 것을 보고 있다. 이 모든 기억들은 다른 것들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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