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한국경제의 아픈 손가락

머니투데이 송정렬 부장 | 2016.03.08 13:58

편집자주 |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기까지 100년을 기다린다해도 나는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요하네스 케플러)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순 없지만,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많은 '메아리'를 부탁드립니다.

#사업실패에 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일자리마저 마땅치 않았던 아버지를 대신해 낯설은 서울에 올라와 3남1녀 자식들을 키워야하는 삶의 무게는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음식솜씨를 앞세워 식당, 하숙집을 하며 억척스럽게 어머니는 그 세월을 살아내셨다. 아니 ‘새끼들을 위해’ 버텨내셨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 세대 정도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다.

단칸 셋방에서 여섯식구가 부대끼며 살던 어려운 시절에도 어머니는 결코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다(아마도 어린 시절이라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토록 강인하던 어머니의 눈물을 본 것은 대학생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집에 도착한 소포 하나가 오랜 세월 굳게 닫혔던 어머니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소포의 내용물은 며칠전 군에 입대한 둘째아들이 입었던 사복이었다. “큰놈은 장남이라서 애지중지 남부럽지 않게 키웠고, 넌(막내) 먹고살만해져서 부족한 것 없이 해줬고, 근데 니 작은형은 정말 힘들 때라...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불러서 갔더니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고 하더라고, 그 때만 생각하면...”

어머니는 소포에 쌓인 옷들을 연신 매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셨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지만, 어머니에겐 세아들 중 가운데 자식이 특히 아픈 손가락이었던 셈이다.

#우리 경제에서도 가운데 자식, 낀 기업인 중견기업들은 서럽고 힘들다. 한마디로 ‘샌드위치 신세’로 지원은커녕 제대로 대접조차 받지 못한다.

일단 정체성이 모호하다. 법적으로는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이 아니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이 아닌 기업들이 중견기업이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3000여개의 ‘어중간한’ 기업이 바로 중견기업이다.

한국경제의 장남인 대기업들은 오늘날 선진국 진입을 앞둔 한국경제 성장을 주도한 주역이자 대표선수로 대접을 받고 있다. 굳이 과거 개발시대 정경유착의 빛과 그림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기업들이 그 역할 만큼이나 국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재벌정서가 높다지만, 많은 수의 국민들이 삼성의 위기론을 걱정할 정도로 대기업은 한국경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다.


어렵기는 막내격인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가장 딱하다. 하지만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엔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중소기업들이 다 혜택을 볼 순 없지만,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판로를 개척해주는 등 정부는 매년 중소기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더구나 중소기업은 정치권조차 무시할 수 없는 340만개라는 막강한 숫자의 힘도 갖고 있다.

중견기업의 정책적 소외감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려하는 ‘피터팬증후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정책적 보호의 ‘우산’을 벗어던지기 싫어 스스로 성장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또한 90년대 이후 설립된 국내 기업 중에서 대기업 반열에 오른 곳이 겨우 미래에셋, NHN 등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도 한국경제구조에서 중견기업의 성장과 생존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방증한다.

중견기업을 위한 법제도가 생긴 것도 불과 2년전이다. 2014년 중견기업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그나마 중견기업의 성장촉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첫 토대가 마련됐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 잣대를 적용한 다수의 법이나 제도들이 중견기업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지난해 중견기업들이 납부한 법인세는 약 8조원으로 추산된다. 전체 법인세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지난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나마 수출액을 늘린 것도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들이었다.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중간’ 중견기업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더 이상 중견기업들이 한국경제의 아픈 손가락으로 방치돼선 안된다. 지금 한국경제엔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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