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확인한 필리버스터 8일…여·야도 '윈-윈'?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 2016.03.01 17:16

[the300] 필리버스터 기록 모두 갈아치워…테방법 처리 속 더민주도 실리챙겨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마친 뒤 동료의원들과 포옹하고 있다. 이날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발언으로 국회의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이전 국내 최장 기록은 1969년 8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15분 동안 발언을 한 바 있다. 다만 박 전 의원은 이같은 분투에도 3선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6.2.2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불어민주당이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8일 만에 종료하기로 했다.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운 필리버스터에 대해 여권은 '선거용'이라고 비판했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도 나름 '윈-윈'했다는 분석이다.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지난달 23일 오후 7시6분 시작됐다. 필리버스터 중단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원총회가 시작될 1일 오후 6시30분까지만 따져도 약 168시간 동안 이어지는 셈이다. 2011년 캐나다 민주당(NDP)이 가지고 있던 세계기록(58시간)을 3배 정도 뛰어넘었다.

첫 연설에 나섰던 김광진 의원은 5시간32분 동안 단상을 지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제6대 국회의원 시절 세웠던 5시간19분의 기록을 넘어섰다. 뒤이어 은수미 의원은 무려 10시간18분 동안 연설을 진행하며 박한상 신민당 의원의 1969년 3선개헌 저지 반대토론 기록(10시간15분)을 깼다. 지난달 27일 정청래 의원은 11시간39분 동안 연설을 해 은 의원의 기록을 사흘만에 경신했다.

새누리당은 부정적이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선거용 얼굴 알리기', '입법 발목잡기'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필리버스터에 맞서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릴레이 피켓시위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관심은 뜨거웠다. 국회에서 고성이 오가는 대신 논리정연한 토론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도 이어졌다. 필리버스터를 보기 위해 하루 평균 5000~6000여건이었던 국회방송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 접속자수도 5만~10만건 내외로 치솟았다. 휴일인 3·1절에도 국회 본회의장에 방청객들이 찾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이 테러방지법 수정을 요구하며 진행 중인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시민들이 31번째 주자 안민석 의원의 무제한토론을 보고 있다. 2016.3.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경신함에 따라 외신의 주목도 받았다. LA타임스, ABC, NBC,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지들이 국내의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 이슈를 보도했다. LA타임스는 특히 "한국 야당으로서는 드물게 보이는 협동 행위"라고 높게 평가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용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국회방송 시청률이 20배 가까이 뛰었다. 선거를 앞두고 '국회라는 곳이 그래도 괜찮은 곳'이라는생각을 심어줬다"며 "외국의 경우 필리버스터는 굉장히 중요한 입법과정 중 하나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의회 민주주가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정국은 여야에 '윈-윈'에 가까운 결과를 남겼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더민주가 필리버스터 중단 의사를 밝힐 경우 테러방지법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다. 여-야 파워게임에서 새누리당이 다시 한 번 완승한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강점인 안보전문 정당의 이미지도 유지할 전망이다.

더민주도 실리는 챙겼다는 평가다. 8일째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의 사생활 및 인권 침해 문제를 부각시켰다. 필리버스터가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축소시켜 더민주에게 굳건한 제1야당의 위상을 가져다 줬다는 분석도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앞은 이종걸 원내대표. 2016.2.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더민주의 정치적 색깔이 변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김종인 체제'가 아닌 과거의 더민주였다면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끌고갔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영선 의원 등은 강경한 입장을 보인 이종걸 원내대표를 끈질기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념 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큰 테러방지법 대신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패로 이슈를 옮겨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야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중도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며 "다만 일주일 동안 지속해온 필리버스터를 그만두는 명분이 부족했던 것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존 지지자들의 반발을 얼마나 잘 무마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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