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前사장, 공공기관 첫 출근한 날 "여기가 군대?"

머니투데이 대전=류준영 기자 | 2016.02.29 03:00

이상훈 ETRI 원장의 '좌충우돌' 혁신 스토리…"'꽝' 될 수 있지만, 땅만파다 갈 수 없다"

정문 출입통제소 옆 현수막들을 유심히 지켜본 그는 임직원들에게 “이왕이면 과제발표회나 국제학술대회 등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자리엔 ‘공직자 기강 확립’ 구호가 뻘건 페인트로 찍힌 현수막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 날은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한파가 몰아쳤다. 안전보안팀장이 행정동 문 앞에서 대기하다 출근하는 그에게 다가와 "연구소 전체 보안 이상 없습니다"라고 보고한다. 그는 보안팀장에게 "자네 안 춥나, 왜 나와서 기다려, 앞으로 보고는 문자로 하게"라고 말했다.

이상훈 ETRI 원장/사진=ETRI
◇군대 같던 ETRI=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신임 원장의 첫 출근길 모습이다. '실용'과 '합리'를 추구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을 대략 짐작케 한다.

국내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오늘날 모바일 인터넷의 원천인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상용화하며 'IT 코리아'를 견인한 ETRI의 지금 모습은 그에게 매우 낯설었다.

이 원장은 ETRI 첫 출근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군대를 다시온 느낌"이라고.

이 원장은 ETRI 설립 40년 만에 첫 외부인사 CEO로 주목을 받았다.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KT 사장으로 재직하며 쌓아온 30년의 기술 안목과 리더십을 보수적인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어떻게 녹여낼지 '기대 반 우려 반' 시선들이 쏟아졌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조직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해 46명의 전담팀(TF)을 23일 간 풀가동해왔다. 관련 연구자 수십명을 직접 만나고, 또 만났다. 이 원장은 "꼬챙이로 푹푹 찔러 다 터뜨려놓고, 그런 다음 수습해야지, 임기 3년 간 나쁜 짓만 하려고 한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합리적인 ETRI=민간기업에 재직하며 수십 년 간 매출·영업이익 등 숫자에 민감했던 그다. 이 원장은 ETRI가 영리 기관도 아닌 데 자꾸 ‘인풋 대비 아웃풋(투자 대비 결과)’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연구비운용계획도 기술중장기계획 세우듯 ‘합리적’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적어도 5년 앞을 내다본 지속적인 R&D(연구·개발)를 위해선 계획적으로 과제비를 쓰는 플랜 작업이 몸에 익어야 합니다. 또 간절하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10건 했으니 다음 해에는 30건으로 숫자 늘리기는 의미 없어요. 보유한 기술과 회사의 매치가 잘 이뤄지는지를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재도약 ETRI=이 원장은 TF가 내놓은 보고서에 맞춰 이달 조직을 새롭게 재편했다. 기술기획 능력 강화를 위해 '미래전략연구소'가 새로 간판을 달았다. 온·오프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변화소통실'도 신설했다. 복잡한 조직 계층을 단순화해 수평간 소통을 유도하고, 직할 부서의 자율성과 권한도 부여했다.

"시쳇말로 '꽝'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3년 간 헤집어 놓고 땅만 파다가 갈 순 없잖아요. 우리 연구자들, 밖에서 싸늘한 시선을 보내도 여전히 '1등 연구소'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요. 그 마음 속에 마그마를 터뜨릴 수 있도록 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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