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개성공단의 눈물

머니투데이 송정렬 부장 | 2016.02.26 06:00
2004년 12월 15일 북한의 개성시 봉동리에 위치한 한 공장에서 스테인리스 냄비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그해 말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통일냄비’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틀만에 1000 세트가 동났다.

평범한 이 냄비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에선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남한의 자본·기술력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해 경제협력을 나선다는 꿈같은 구상이 분단 59년 만에 눈앞에 현실화된 상징이었기 때문.

천안함 침몰 사건 등 일촉즉발의 남북간 정치적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12년간 열렸던 개성공단의 문이 닫혔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이라는 정부 조치에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맞불을 놓으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라는 기대마저 사라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기업들의 몫으로 남았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120개 기업의 피해액은 고정자산 5688억원, 재고자산 2464억원 등 총 8152억원에 달한다. 물론 여기엔 납품 미이행에 따른 원청업체 클레임, 영업관련 손실은 빠져있다.

정부는 입주기업들의 조속한 피해복구와 경영정상화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입주기업들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정부는 ‘지원’을 말하고, 입주기업은 ‘보상’을 주장한다.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북한에 두는 정부는 국가 행위의 적법성을 손상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보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입주기업들의 상황이 딱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초법적인 지원에 나설 순 없지 않냐”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2013년 5.24 조치 이후 123일간의 공단 폐쇄로 피해를 경험한 기업들은 돈을 빌려주는 수준의 정부 지원만으로는 살길이 막막하다. 실제로 5.24조치로 피해를 입은 일부 기업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다. 법적으로 호소할 여지도 마땅찮다.

정부와 입주기업들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절박한 입주기업들에 2차 피해를 가하는 저급한 말들이 나온다. ‘그동안 번 돈은 다 어쩌고, 보상 운운하며 국민 세금을 노리냐’, ‘위험할 줄 모르고 개성에 공장 세웠냐’ 등등이다.


우선 입주기업들의 면면을 보자. 123개 입주기업 중엔 쿠쿠전자, 로만손 등 비교적 알려진 중견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사양산업으로 꼽히는 노동집약적인 섬유봉제업종 기업들이 73개로 59%에 달한다. 자산 100억원 미만의 기업이 64개다.

그럼 이들 기업이 저렴한 북한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돈을 벌었을까. 회계 자료를 제출한 114개 입주기업 중 지난 3년 연평균 5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린 기업은 겨우 37개였다. 56개는 5억원 미만이었고, 21개는 아예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렇듯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위험이 상존하는 개성공단에 100% 생산비중을 둔 기업이 49개, 그나마 고정자산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 있는 경험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이 44개에 달한다. 경영리스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판을 확보할 여력도 없었던 셈이다.

이번 사태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입주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기업들에 경협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 긴장도를 고려하면 험난하겠지만, 언젠가 다시 남북경협의 길은 열릴 것이다. 개성공단의 기억이 상처로 남는다면 과연 어떤 기업이 험난한 경협의 길에 선뜻 나서겠는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발생한 문제는 결국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풀 수밖에 없다. 입주기업들도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날 국회로 여야를 찾아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야 정치인들은 입주기업들의 피해보상을 위해 특별법이라도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4. 13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불과 며칠만에 국회에선 특별법의 특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 있는 입주기업 사무실에서 입주기업들은 목이 터져라 연일 대책마련 호소하지만, 코 앞 국회에선 메아리조차 없다. 하루하루 도산의 그림자에 쫓기는 입주기업들은 오늘도 바싹바싹 피가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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