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불계바둑과 한반도 정세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2016.02.23 02:53
필자는 바둑을 전혀 두지는 못하지만 고수들의 대국을 감상하는 것은 매우 즐긴다. 그들의 바둑은 인간의 여러 심리를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많은 일이 꼭 바둑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둑은 그 형식도 다양해서 보통은 두 대국자가 겨루지만 2명이 쌍을 이루거나 3명이 팀을 이루어 대국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을 정한 스포츠와 달리 대국이 중간에 끝날 수도 있다.

종국이 되어 계가(計家)로 이어지는 바둑은 초반에 한 쪽이 돌을 거두어 끝이 나는 불계(不計)바둑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보통은 형국의 유불리가 크지 않은 바둑이 계가로 가기 쉽다. 이때 약간 불리한 쪽은 좀 강하게 버티는 수를 많이 두는 반면 유리한 쪽은 안전한 수를 많이 둠으로써 유리한 국면을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초반의 차이가 끝에 가서는 조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도박과 같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보이는 특성도 이와 흡사하다. 도박에서 손해를 본 사람은 위험을 더 감수하는 방향, 즉 더 많은 돈을 내기에 걸어 손해를 만회하고자 한다. 반대로 돈을 딴 사람은 좀 더 보수적인 결정, 즉 지금까지 보다 더 적은 돈을 걺으로써 자신이 딴 돈을 지키고자 한다. 이때 손해를 단번에 만회하거나 더 많은 이득을 얻고자 과도하게 큰돈을 걸면 극단적으로 아주 많은 돈을 따든가 아니면 모든 돈을 잃는다.

불계바둑도 보통은 이러한 식의 대응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형국이 비슷하든 아니든 간에 단번에 이기기 위해 대마전투를 벌이거나 지나치게 강한 수를 들고 나오는 경우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어려워진다. 이때는 어느 쪽이든 이기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달려들게 마련이다. 용호상박의 경쟁모드가 작동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드에선 말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자신이 쓸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서 상대방을 패배시키려고 한다.


걱정스럽게도 오늘날 우리 한반도가 불계바둑의 형국과 꽤 닮아 있다. 남북 간에 작동하는 공동의 목표가 적어도 지금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 탑재를 위한 위성 발사는 그동안 가까스로 작동하던 공존모드를 경쟁과 대결이라는 모드로 완전히 되돌려놓았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더 강력한 무기들이 집결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어떠한 대응이 맞고 틀리는지는 차치하고 이 땅에 긴장감이 고조된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만은 틀림없다.

또한 여러 명이 편을 짜서 겨루는 대국처럼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점점 복잡해지면서 심각한 혼돈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를 양편으로 하는 대결구도가 급속히 부각하는 것이다. 팀으로 하는 대국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팀원들 간에 마음이 맞는 것 못지않게 상대 팀원들의 스타일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각자가 대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든 작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핵 문제에 여러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불계바둑이 현실과 다른 점은 승패가 갖는 의미에 있다. 바둑에서는 이긴 쪽은 이득을 보고 진 쪽은 손해를 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 사람들은 양쪽 모두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라 하더라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그러한 도구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양쪽 모두 더 큰 손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여러 심리학 연구가 입증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열과 승패가 불계바둑처럼 중간에 판가름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계가바둑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드물지 않게 있다. 우리 한반도의 문제도 계가바둑처럼 모두가 끝까지 함께 가는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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