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에 쓰는 엄마 반성문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 2016.02.19 08:32

<3> '아이는 부모 생각만큼 성장한다'

편집자주 | '쿨투라'(cultura)는 스페인어로 문화다. 영어 '컬처'(culture)나 '쿨투라' 모두 라틴어로 '경작하다'(cultus)에서 유래했다. 문화는 이처럼 일상을 가꾸고 만드는 자연적 행위였는데 언제부터 '문명화된 행동', '고급스러운, 교양있는'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게 됐을까. 여전히 문화는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이 맞다. 21세기가 시작된지 15년. 30년, 50년 후의 우리 사회의 문화양식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특히 인공지능, 생체인식과 같은 과학IT기술 발달로 사람과 자연외에 공존하게 되는 또 다른 무엇이 다가온다. 그 시대의 문화는 어떻게 달라질까. 경계를 허물고 융합하면서 새롭게 진화하는 문화의 모든 모습을 함께 살피고 나누고자 한다.

초등학교 졸업후 중학교 이후 진학을 포기한 유진양. 유진양은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 초등학교 졸업학력으로 또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24살을 맞기로 결심했다. 그가 세운 '10년 프로젝트'의 핵심은 읽고, 쓰고, 말하기다. 국영수 교과서가 아닌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어 공부하는 유진양의 미래가 궁금하다. /사진=이기범기자(본지 2월 13일자 인터뷰 게재)
“학교에선 질문이 통하지 않았어요.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도, 반기는 사람도 없었죠.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질문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원했어요.”

‘지드래곤을읽다’라는 책을 만든(쓰기만 한 게 아니라 표지, 편집도 직접 했다) 유진 양의 인터뷰 한 대목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도 안 볼 거야”라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진학 포기를 선언한 청소년이다. 대신 24살까지 ‘10년 프로젝트’를 짰다. 국·영·수 교과서를 잡는 대신 읽고, 쓰고, 말하는(발표 및 토론) 방법에 대해 공부한다. 분야는 ‘의·식·주·체·덕·지·시간·공간·학(學)·상(商) 읽기·쓰기·말하기’. 학교 밖에서 공부해온 지 4년, 그는 올해 열여덟이 됐다.

이 인터뷰를 페이스북에 공유했을 때 한 번 더 놀랐다. 친구를 맺고 있는 한 엄마의 답글 때문이다. “우리 집 막내아들(사린)은 초등 1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어요. 곧 검정고시를 보는데 아무 문제 없이 밝게 잘 자라고 있어요.”
놀라움에 간단한 통화로 추가 얘기를 들었다. “질문이 없는 게 싫었대요. 물어도 대답도 안 해주고 똑같은 것만 하라고 했다네요.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봐 주지 않는 게 싫었답니다. 어떤 글을 써서 학교장상을 받았는데 그거 받고 나더니 더는 원이 없다며, 그만 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유진도 사린도 ‘질문 없는 답답함’을 말한다. 답을 해주지 않는 것, 똑같이 하라고 강요하는 것. 또 다른 ‘증언’을 들었다. 최근 미국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 이야기다.

“거기 선생님들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은 공부 잘하는 데 질문 안 하고, 공부를 못하는 데 질문도 안 하는 애들이더라. 공부를 잘하는데 왜 더 깊은 질문을 하지 않고, 공부를 못하는데 왜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느냐는 거지. 적어도 초등학생까지는 어떤 질문도 맘대로 하게 해. 그러니 아무리 엉뚱하고 말 안되는 질문을 해도 그 선생님들은 다 받아주지. 우리랑 너무 다르더라.”

어느 대안학교 학생들의 사례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결과를 그대로 보여준다. 호기심이 컸던 아이들이 자동차 관련 과제를 수행하다가 여러 의문이 들어 국내 자동차 회사에 질문했다. 국내 기업은 이 문의를 외면했다. 이들은 차선으로 미국의 한 명문대에 다시 질문을 보냈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질문이 기발하다며, 비용을 들여 학생들을 초청했다. 그중 2명은 그 학교에 입학해 자동차를 연구하게 됐다.


질문 하나에 대한 반응은 개인의 선택과 운명을 바꾸지만, 결국엔 그 사회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 에디슨이나 주커버그가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초등학교 졸업장만으로 24살을 맞겠다는 유진양의 선언에 보인 부모의 반응도 놀라웠다. “좋아! 뭐 하고 놀까?”였다니. 전화 인터뷰를 한 사린이 엄마의 담담하고 밝은 목소리도 마찬가지 여운을 남긴다.

유진 양의 아버지는 작은 출판사를 한다. 유진이 오전에 가는 곳은 아버지 ‘작업실’이다. 아버지는 가까이서 유진양의 궁금함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길을 잡아주는 스승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 중퇴를 선택한 사린 군의 아버지는 목사다. 사린이 아버지는 주중에는 작은 도서관(‘지혜의 등대’)을 운영하고 일요일에는 그 장소에서 목회활동을 한다. 사린은 여기서 즐거운 독서를 하면서 컸다.

“남편이 동기부여를 잘 해주는 편이죠. 도서관을 하다 보니 늘 책하고 가깝게 지내고, 대화도 많이 해요.” 사린이 엄마의 얘기를 듣자니 ‘아이는 부모 생각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떠나는 아이들만 용기 있다고 볼 수 없다. 남는 아이들이라고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교를 선택하고 포기하고가 핵심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학교를 떠나는 결정적인 원인이 ‘질문을 가로막는 현실’이라는 점, 남아있는, 버티는 아이들 역시 꾹 참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그렇다 해서 “다 그러니 별나게 굴지 말고 참아라” 라고는 하지 말자. 아이들에게 질문할 기회와 시간을 주고, 질문하는 법을 잊어먹지 않도록 하자. 그들의 문제의식에 반응을 보여주자. 새 학기, 이래저래 반성문과 각오는 애들 몫이 아닌 어른의 몫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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