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변호사냐"…美변호사 자격논란 재점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6.02.04 06:01

[the L][L리포트] 국내파·해외파 갈등 점입가경…"상생방안 마련 절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민 위원장과 여야 의원들이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의 합작 법무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있다. 2016.2.1/뉴스1 오대일기자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으로 외국 대형로펌의 한국진입이 가시화된 현 시점에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국변호사들에 대한 자격검증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않은 이들이 법률자문 서비스를 하고 있는 불법행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서울변호사회 관계자)

이달 초 외국 로펌(Law Firm)과 국내 로펌의 합작 법무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국변호사'에 대한 논란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국내파 변호사들은 미국변호사에 대해 "변호사 호칭을 쓰지 못하게 돼 있음에도 이를 불법적으로 쓰고 있다"며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변호사를 사칭하며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이미 법조계 뿐 아니라 각 기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이들은 "외국법자문사법 등 외국 변호사를 규율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국내에서 활동해왔다"며 "국내법 자문을 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도 견제하는 것은 물론 외국변호사라는 호칭도 못 쓰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반박한다.

◇ "美변호사나 미국法자문사 호칭 법위반…엄격히 제한해야"

'미국변호사'란 미국 50개 주 중 하나나 복수의 지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미국변호사라는 호칭은 현 법률상으로도 정식 명칭은 아니다. 미국이 각 주마다 다른 법률을 적용하고 있고 연방차원의 변호사 자격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변호사라는 호칭은 엄격히 '뉴욕주법 자문사' '캘리포니아주법 자문사' '위스콘신주법 자문사' 등으로 바꾸는 게 맞다. 편의상 '미국 변호사'라는 호칭이 통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자문사'라는 호칭도 아무나 쓸 수 없다. 현행 외국법자문사법은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현지에서 3년 이상 실무경력을 갖추는 등 요건을 구비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이들만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국내 변호사 측은 수년째 외국변호사에 대한 강공을 펼치고 있다. 2013년 이후 서울변회가 미국변호사 등 외국변호사를 대상으로 변호사 직함을 사칭했다거나 법률자문업무를 수행했다는 등 이유로 고발한 이들만 6명에 이른다. 방송 등에 출연해 본인을 '국제변호사'로 소개한 이들도 고발대상이었다. 지난해 11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나승기 비서실장을 변호사법, 외국법자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와 별도로 서울변회는 지난해 3월 직역침해 단속 등을 위해 '변호사법 위반 신고센터'를 설립,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등록된 외국법 자문사 외에는 '미국법자문사' '미국변호사'와 같은 명칭을 쓸 수 없다"며 "외국법 자문사로 등록하기 위해 현지에서 3년의 경력이 필요하나 현재 국내 로펌이나 기업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외국변호사 자격자들은 3년의 경력을 채우지 못해 외국법 자문사로 등록할 자격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로펌의 미등록 외국변호사 자격자에게는 미등록 상태로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비(非)변호사로서 변호사와 동업한다는 점 등에서 법률적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 외국변호사 통계 사실상 전무…사내변호사 위주로 활동

외국변호사의 현황에 관한 통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법무부조차도 명확한 자료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초 기준 법무부의 외국법자문사 자격 보유자는 2012년 6월 이후 최근까지 108명으로 이 중 86명이 미국 뉴욕주,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외국로펌이 국내진출에 대비해 설립한 지점에 속해 있다. 실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등 외국변호사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의 대다수가 일반기업에 속해 있다고 추정한다. 약 4000~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1980~90년대부터 국내 기업의 해외활동이 많아지면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을 대거 사내변호사 형태로 채용하면서 미국변호사의 활동도 확대됐다. 1999년 국내에서 처음 설립된 사내변호사 단체인 IHCF(인하우스 카운슬 포럼)에서 미국 등 외국변호사가 주류인 점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국내 한 보험사에서 일하는 A씨는 "처음에는 사내변호사 형태로 미국 등 외국변호사들이 주로 활동을 했고 국내변호사의 인하우스(사내) 진출은 드물었다"며 "국내에서 변호사 수가 늘어나며 기존 로펌의 문호가 좁아진 데다 국내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도 증가하면서 외국변호사들과의 갈등도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변호사를 중심으로 미국변호사들이 주로 뭉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 변호사들이 로펌으로 취직하거나 개업변호사 형태로 업(業)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일반기업에 취직한 사내(인하우스) 국내 변호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국내기업들의 활동무대가 해외로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도 미국 등 외국변호사들의 사내취업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법조인 배출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나며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3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1990년대 중반 들어서는 500명선으로 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1000명을 넘어섰다. 2012년부터는 국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도 대거 배출됐다.

한 제조업계에서 활동하는 미국변호사 B씨는 "활동영역이 전혀 달랐던 과거에도 호칭규제 등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외국변호사들의 호칭이나 활동에 대해 한국변호사들의 견제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된다"며 "대외적으로 '~~나라 변호사'라는 호칭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변호사 참칭'이라고 고발하고 견제하는 것은 최근 들어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과거에는 송무 쪽에만 집중하던 한국변호사들이 수익원 다양화 차원에서 기업자문 쪽으로 업무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기존에 사내변호사로 활동하던 외국변호사들과 업무영역이 중첩되며 국내파와 외국파 변호사간 알력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 미국변호사의 실력에 대한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국내 한 증권사의 한국변호사인 C씨는 "한국변호사는 한국법에 대한 이해는 물론 경우에 따라 다양한 전문분야나 교양에 대한 교육까지 이수한 전문인"이라며 "이에 비해 미국 변호사 자격시험의 수준도 국내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비해 크게 낮은데 실무요건마저 갖추지 않은 이들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도 "해당 전공을 대학교에서 이수했다는 등 이유만으로 법률자문 업무를 하도록 하는 등 행위는 자격증 제도의 기틀을 흔드는 행위"라며 "국내 법령에 의한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호칭, 행위가 제대로 규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미국변호사 D씨는 "국내 변호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더라도 법논리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자체가 무리"라며 "엄연히 적정과정을 거쳐 외국에서 취득한 자격에 대해 과도하게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 여전히 큰 시각차…"상생방안 마련해야"

하지만 이미 수십년째 국내에서 활동해 온 외국변호사들에 대해 호칭제한이나 업무제한 등을 과도하게 집행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국내 한 증권사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한국변호사인 E씨는 "국내법 자문을 못 하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한 데도 현행 법령은 외국에서 정식으로 취득한 변호사 자격에 대해서도 '자문사'라는 호칭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법률시장 개방이나 법률 전문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A씨 역시 "경력·실력검증을 이유로 '현지 3년 실무경력' 요건을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국내 주요 로펌이나 일반 기업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외국변호사들이 퇴출돼야 한다"며 "대한변협이나 서울변회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해당법령 위반에 대해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외국변호사 자문업무 수행사건에 대해 검찰에 문의한 결과 미등록 외국변호사가 사용한 명칭에 따라 변호사법·외국법자문사법에 의거해 처벌하되 실무상으로는 대부분 기소유예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이 법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씨는 "외국변호사에 대한 과도한 호칭제한은 완화해주되 국내법에 대한 자문행위 등에 대해서만 제한하도록 규제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국내, 외국변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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