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한 통도 "카드로 결제"…거절 못하는 유일한 나라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 2016.02.04 03:25

['표퓰리즘'에 흔들리는 카드업계]<下>-②해외는 관련 규정 전무 "폐지하고 시장논리 맡겨야"

편집자주 | 지난 1월31일부터 적용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신용카드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치권의 공세로 수수료율 인하폭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카드사들은 수익성 악화를 떠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위기와 갈등이 가맹점 수수료율의 근간인 적격비용을 재산정하는 3년마다 반복될 것이라는 데 있다. 머니투데이는 2회에 걸쳐 카드업계의 뇌관이 돼버린 가맹점 수수료율을 둘러싼 쟁점을 짚어보고 해법을 찾아본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소액은 신용카드 결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현금을 넉넉하게 준비하라'는 주의사항을 자주 듣게 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껌 한 통을 사고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일이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겐 영 불편하고 낯설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무리 소액이라도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는 국가다. 단 100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한다고 해도 가맹점이 거절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신용카드 '의무수납제' 때문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 제19조 1항은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제금액과 무관하게 가맹점은 고객의 신용카드 사용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한 의무수납제가 포함된 여전법은 1998년 1월부터 시행됐다. 카드 사용을 활성화해 탈세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일정 조건 이상의 가맹점은 의무적으로 카드 가맹을 하도록 했다. 국세청이 직접 나서 직전 과세 기간의 수입금액 합계액이 2400만원 이상인 사업자에 대해 신용카드 가맹을 요구했고 신용카드사와 가맹 계약을 맺으면 카드 수납을 거절하거나 현금과 같은 다른 지급 수단과 차별을 할 수 없게 했다.

문제는 세원 투명성을 위해 도입한 이같은 의무수납제가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점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영세 상점을 포함한 거의 모든 소비자 대상의 사업자들이 사실상 모든 카드사들의 가맹점이 돼야 하고 의무적으로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맹점들은 원하는 카드사를 선택할 수 없게 되고 카드사들이 제시하는 가맹점 수수료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카드 가맹점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서 시장 실패가 나타나게 됐다는 지적이다.


시장 실패에 따른 부작용은 영세가맹점들 사이에서 심각했다. 영세가맹점들로선 건당 매출액을 고려할 때 카드 수수료율이 너무 과도했다. 500원짜리 껌을 카드로 결제해주면 수수료를 내고 나서 오히려 손실이 났다. 영세가맹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정부는 문제의 원인이 된 의무수납제를 손보기보다 시장에 가입해 영세가맹점들에 대한 수수료율을 직접 정해 강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부가 가맹점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자본시장 질서를 해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게다가 가맹점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며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를 폐지해 가맹점에 대해 일정 금액 이하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드사들도 의무수납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카드 결제 건당 약 150원 안팎의 밴(VAN, 결제대행업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만원 이하의 소액 결제는 역마진이 나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카드사들이 소액다건 업종인 약국과 편의점에 대해 카드 수수료율을 올리려 했던 것도 소액 카드 결제는 많을수록 비용 부담만 늘기 때문이다.

카드 의무 가맹과 이에 따른 무조건적 의무수납제는 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국제적 흐름과 단절된 불합리하고 불편한 규제)이기도 하다. 여신금융협회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의무수납제와 관련한 카드 의무 가맹 규정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선 사업자가 카드 가맹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카드사와 가맹 계약을 맺으면 카드 수납을 거절하거나 현금 등 다른 지급수단과 차별을 금지하는 경우는 있지만 소액에 대해서는 가맹점이 알아서 카드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와 호주는 이같은 조건부 의무수납제마저 폐지한 상태다.

이효찬 여신금융연구소 실장은 "해외에 없는 의무수납제가 있는 상태에서 카드 결제금액이 점점 소액화되고 있어 카드사들의 수익성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며 "규제를 줄이고 시장 기능이 살아나는 방향으로 카드 가맹점 질서를 새로 잡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세원 투명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의무수납제를 과도하게 연장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소액은 현금영수증으로 세원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가맹점과 카드사의 반복되는 갈등의 골을 없애기 위해 의무수납제를 폐지하고 가맹점 수수료 문제를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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