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꿈을 접은 후…작은 빛이어도 따라가면 내 몸을 밝게 해주니"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 2016.02.11 03:10

'2015 장애인미술대전' 대상 구필화가 김영수…TV 화면의 한 장면에 새 인생 설계

근육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 화가 김영수씨. /사진=박진하 인턴기자 photoray@mt.co.kr
1977년 초겨울. 이제는 구두를 못 신는 김영수씨는 운동화, 점퍼 차림으로 면접을 봤다. 고 김수근의 건축사무소인 ‘공간’의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에서다. 고려대 건축학과 졸업 즈음이던 김씨는 보행능력, 근력을 점차 잃는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이미 딱딱한 구두를 신으면 쉽게 힘들어졌다.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김씨는 '공간'의 신입사원으로 뽑혔다. 김씨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설계로 바쁜 설계 2팀에 배속됐다. 하지만 다른 신입사원처럼 움직이기 힘들었다. 김씨는 뛰지 못했고, 앉은 자리서 일어나려면 손으로 무릎을 꾹 짚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65세의 김씨는 한 번에 3~4시간 이상 앉는 것도 힘든 몸이 됐다. 근육병이 악화되면서 작은 움직임이 큰 피로가 되어 온몸을 짓누른다. 휠체어 손잡이 위에 올려진 손은 이제 움직일 수 없다. 김씨는 지체장애 1급이다.

하지만 김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아침마다 서울 보라매병원 인근 작업실로 온다.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리는 그림, ‘구필화’(口筆畵)를 그리기 위해서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도심 산동네를 묘사한 '시티 스토리'라는 그림으로 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김씨는 "근육병이 악화하여 '공간'을 떠나고 나서 한동안은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라며 "주변에서 '그 몸으로 뭘 하니'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바둑을 두거나 신문 스크랩을 모으고 하는 식으로 무엇이든 몰두하는 세월이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하루를 바쁘게 살려 했다.


김영수씨가 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시티 스토리'. /사진제공=김영수
김씨는 그러나 1990년대 '빛'을 봤다. 어느 날 TV에서 흘러 나오는 '구필화가'의 모습이 그 빛이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입으로 붓을 물고 캔버스 위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김씨는 그림을 그릴 때 물감과 미디엄(매제) 등을 섞어 캔버스 위를 두텁게 바르고 나서 대나무 젓가락으로 드로잉을 남기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하면 화면을 깊게 파고 들어간 선이 남는다. 김씨는 "청자의 상감기법을 응용해 봤다"고 했다. 그 선은 달동네 등 서민들의 생활 공간을 묘사한다.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달동네와 그 곁 쓸쓸한 나무들을 묘사한 선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장애인 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인 '시티 스토리'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김씨는 이와 같은 작품 외에도 1990년대 이후 추상·구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향해 나갔다. 정부가 지원하는 도우미는 김씨 구필화 작업을 위한 주변 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씨는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조그만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비록 그 빛이 작을지라도 당신의 몸을 밝게 해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씨는 본격적인 그림에 도전한 이듬해 3세 연하의 간호사 아내를 맞았다. 현재는 대학 1학년생인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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