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노·사·정은 본연의 역할 찾자

머니투데이 이근덕 노무법인 유앤 공인노무사 | 2016.01.27 04:44
집 안방에 걸려 있는 족자에는 ‘기쁜 소식, 좋은 기운’이란 글이 적혀 있다.
 
2016년 새해 첫날 나는 그 족자를 바라보며 대한민국 노사관계에 기쁜 소식과 좋은 기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했다. 기쁜 소식은 밖으로부터 전해오는 설렘과 기대고, 좋은 기운은 맑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의 흐름이다. 기쁜 소식은 좋은 기운을 안겨주고 좋은 기운은 기쁜 소식을 끌어들인다. 새해 첫날의 소원으로는 일품이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최근 노사관계는 노사가 아닌 노정(勞政)이 중심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노사관계를 노사정관계라고 했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졌음을 반영한 것이리라. 하지만 ‘정’(政)이 노사관계 당사자로서의 정부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정’이란 노사관계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한 환경, 즉 노동관계 법률과 각종 노사관계 관련 제도 그리고 그 법률과 제도를 집행하는 정부의 노동정책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집단적 노사관계는 노사간 자율적인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노사자치주의’를 원칙으로 하며, 정부의 개입은 계몽적·정책적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주도가 아니라 조정과 조율이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노사관계를 주도하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들여 이룬 ‘9·15노사정 합의’는 그 합의까지만 중요했고 이후 합의정신 이행은 부족했다. 실제로 가장 민감했던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 그리고 ‘임금피크제 도입’ 문제에 대해 9·15 노사정 합의에는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나홀로 행진을 시작했고 한국노총이 이에 반발하면서 결국 지난 19일 노사정 합의를 파기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원점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한국노총이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 불참까지 선언했으니 양대 노총이 모두 빠져버린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는 절름발이 신세가 돼버렸고 협조적이던 한국노총마저 정부·여당과의 투쟁을 공언하니 퇴보가 분명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촉박하다지만 정부는 다시 조율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한 정부는 노동개혁을 독자적으로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사실상 조율을 접었고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완화와 관련한 양대지침을 전격 시행했다. 또한 대통령이 노동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앞장서고 뒤이어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까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게다가 총체적 불황에 위기를 느낀 경제단체들까지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동참해 노동계의 반발이 더 커졌다.

노·사·정은 각자 입장과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연의 의무를 무시하고 각자의 길만 고집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노·정 대립의 후유증이 크지 않기를, 그리고 ‘나쁜 기운’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기운을 받는 것보다 좋은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 준비는 바로 노·사·정이 본연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다.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 경영을 이해하는 노동! 그리고 바르게 조율하는 정부! 이 토대 위에서 ‘기쁜 소식’이 샘솟고 ‘좋은 기운’이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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