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 봐, 내가 뭐랬어?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지?” 유행은 돌고 돈다며,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옷도 고이고이 모셔둔 사람이라면 지금 트렌드에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큰소리칠 시기다. 디스트로이드 진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과감하게. 갈기갈기 찢고, 다른 원단을 덧대고, 색깔을 빼내고, 심지어 기름때처럼 보이는 오염을 묻혀놓는 등 디스트로이드 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품었다. 물론 이미 찢어진 것을 사는 것이 가장 쉽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안 입는 청바지로 모험을 감행해도 나쁘지 않다. 방법은, Do or die.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만 정해라. 죽일 거라면 어느 때보다 거칠게 청바지를 혼쭐내라. 살릴 거라면 상처에 밴드를 붙이듯, 성한 부분일지라도 다른 천을 이용해 덧댈 것.
◆ANORAKS ARE BACK
아노락이 돌아왔다. 지구 온난화가 우리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우산의 실종이 아닐까. 기후는 패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의 매일 부슬비가 내리는 영국의 날씨가 트렌치코트를 탄생시켰다면 한꺼번에 퍼붓듯이 쏟아졌다가 이내 그치는, 혹은 부슬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지구온난화 현상은 아노락을 부활시켰다. 잠깐 피하면 그만인 소낙비, 맞아도 그만, 안 맞아도 그만인 부슬비 때문에 한 손을 우산에게 허용할 수 없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기후도 한몫했다. 아침이면 하루 종일 비가 올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가 저녁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개고 나면 우산을 든 손이 그렇게 민망할 수 없다. 이래저래 아노락이 정답이다.
◆TAKE THREE BUTTONS
같은 옷을 입어도 전혀 다른 룩처럼 보이는 현상은 작은 디테일에서 초래된다. 물론 사람마다 제 각각인 체형 탓도 있지만 맞춤 수트인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사소한 부분에서 스타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트를 입는 방식은 세상에 널린 맛집만큼 다양하다. 재킷의 길이, 단추의 수, 칼라의 너비, 바지의 허리선 등 미묘한 차이가 수트의 균형을 좌우하는 것! 이번 2016년 봄/여름 시즌에서는 재킷의 기본적인 요소인 단추의 수가 하나 늘어난 모습이 감지되었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전혀 다른 룩으로 둔갑했다. 마르니는 아웃포켓 장식의 스리 버튼 재킷에서 셔츠의 넓은 칼라를 재킷 위로 꺼내 레트로 룩을 완성했다. 스리 버튼 재킷은 단추를 채우는 개수에 따라 클래식과 캐주얼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 묘미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스리 버튼 재킷을 등한시해왔다면 이제는 타협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스타일을 차별화하고 싶다면 스리 버튼 재킷이 정답이다.
4 (위) 다이아몬드 패턴 네이비 재킷 44만8천원 언어펙티드 바이 솔티 서울, 하트 패턴 셔츠 가격 미정 비욘드 클로젯 (아래) 네이비 재킷 1백15만원 몬테도르 바이 슬로웨어, 스트라이프 실크 셔츠 59만8천원 김서룡.
◆HANG OUT SHIRTS
남성 컬렉션이 일제히 이제 그만 쉬라며 숨 쉴 틈을 주고 있다. 그중 하나로 셔츠를 바깥으로 빼 입는 스타일링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젠더리스 트렌드와도 관련이 있다. 여자와 남자가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이 셔츠인데, 이것을 겨냥해 유니섹스 형태의 셔츠를 많이 만드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런 스타일링은 배가 나오기 시작하는 30대 이상의 남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바지 안으로 셔츠를 집어넣으면 배 부분이 팽팽해지기 마련인데 그럴 걱정 하나 없는 기특한 스타일링 되겠다. 30대에 접어들며 신진대사의 이상으로 증량 현상에 시달리는 여자에게도 행아웃 셔츠가 유용한 것은 마찬가지다. 톡 튀어나온 엉덩이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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