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 체험하기

머니투데이 이민희 음악학 박사과정 | 2016.01.1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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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예민 작품 연주 모습 /사진제공=오예민


오디오비주얼
오디오비주얼(audio visual) 매체의 효과나 의미는 시청각이라는 혼합 상태 그 자체로 분석할 때에만 유효하다. 음악이나 이미지가 개별적으로 가졌던 효과는 그것들이 결합해 시청각 형태를 이뤘을 때는 전혀 다른 종류가 되며,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다.

2015 서울 국제컴퓨터음악제(SICMF)의 일환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인 오디오비주얼 작품들은 집중된 청취와 완벽한 음향 설비, 압도적인 대형 스크린으로 인해 음악과 이미지의 완전한 시청각적 혼합을 이끌어냈다. 청중은 오디오비주얼 작품을 감상하며 음악이나 이미지라는 요소를 분리해서 인지할 수 없었으며, 시청각의 중개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이행했다.

이를테면 작곡가 밀로셰비치(Bojan Milosevic)의 오디오비주얼 작품 <에타르>(“Etar” for audio visual performance)에서는 시청각 체험의 순간이 철학적 성찰로 전이됐다. 영상은 흑백의 점으로 시작해 점진적인 변화를 거쳐 우주의 형상을 한 이미지로 확장됐고 이어 추상적인 도형의 나열로 변모했다. 이미지와 소리는 분명히 흐르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소리나 이미지가 시작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음악은 정확한 음고나 음색으로 인지되기보다는 이미지와의 연계를 통해 일종의 ‘질감’으로만 느껴졌다. 특히 어둠 속에서 도드라지는 스크린의 ‘발광’(發光)은 이 시청각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체험’하고, 숨죽여 ‘기립’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청중은 이 음악이 갖는 내러티브를 쫓거나 결과를 예측하지 않았으며, 모두 멍하니 앉아 빛을 뿜는 스크린을 응시할 뿐이었다.

한편 작곡가 야기사와(Keisuke Yagisawa)의 오디오비주얼 작품 <엑스티엑스 투>(“xtx to” for audio visual media)는 프랑스 소설가 레몽 크노(Raymond Queneau)의 『문체 연습』(1947)을 음악화했다. 이 소설은 짧고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무려 아흔아홉 가지 형식으로 변주해 반복한다. 작곡가는 이 작품의 일본어 번역본 이미지와 그것을 ‘낭독하는 목소리’를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했다. 작품의 아이디어도 레몽 크노와 유사하다. 작곡가는 동일한 이미지와 목소리를 수십 가지로 변형시킨다. 화면 속 글자들은 열을 지어 흘러가며 서로 겹쳐지고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한다. 잉크에서 색이 분리되듯 글자가 무지개색으로 변하거나 이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효과, 그리고 수면 밑에 가라앉은 듯 흐리게 보이는 효과도 등장했다.

화면 속 이미지의 다양한 변형은 그것에 동반된 ‘낭독하는 목소리’의 변형까지 짐작하게 한다. 과연 우리가 동일한 목소리의 아흔아홉 가지 버전을 귀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대신 목소리는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다른 매체’가 됨으로써 그 섬세한 변화를 청중에게 드러낸다. 작은 소곤거림이었다가 수십 번 복제되고 서로 겹쳐져 환청같이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그 의미가 제거된 채 노이즈처럼 변모하는 소리. 이들은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서로 다른 얼굴들’이 되어 청중에게 다가갔다.


라이브 일렉트로닉

컴퓨터 음악의 한 장르인 라이브 일렉트로닉 음악(live electronic music)은 전자음향, 어쿠스틱 악기 그리고 컴퓨터가 상호작용을 하며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구현된다. 전체 소리를 조작하고 관장하는 테크놀로지가 비교적 작품 전면에 노출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작곡가 오예민의 <공감각적 순간>(“Synesthetic Moment” for piano, live video and electronics)은 꽤 긴 준비 끝에 시작되었고 그렇게 울린 최초의 소리가 무척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의 얼굴은 카메라에 의해 무대 앞 스크린에 투영됐고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잔향은 스크린 속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괴이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연주자의 소리신호가 미리 프로그래밍해 놓은 방식으로 변형되어 실시간으로 이미지 위에 투사된 것이다. 연주자가 피아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현을 긁을 때는 단출한 음들이 증폭되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청중은 연주자의 ‘연주’와 그에 따르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의 ‘변형’을 스크린 속 이미지와 새로운 음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라이브 일렉트로닉이라는 구현 방식에 내재하는 상호성이 ‘청중과의 소통’이라는 화두를 껴안고 있었다. 작곡가가 의도했던 ‘공감각’이, 다양한 구성 요소의 본래 형태와 변형 프로세스 그리고 변형의 결과를 한꺼번에 조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라이브 일렉트로닉 음악의 상호성은 동시대 인간의 삶을 투영하기도 한다. 작곡가 부진스카(Nikolet Burzy?ska)의 라이브 일렉트로닉 음악 <플렉트로>(“Flectro” for flute and 4ch. live electronics)에서는 연주자가 플루트 불기를 멈추고 잠시 정지한 순간이 있었다.

플루트 연주자는 가만히 서서 소리로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주하지 않는 연주자, 그리고 그 연주자가 과거에 만든 소리로 가득 찬 공간. 소리에 포섭된 청중과 그것을 응시하는 연주자의 시선은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주자는 연주를 멈추었지만, 연주자가 이전에 만들어냈던 소리가 컴퓨터에 의해 공연장 가득 생생한 음악으로 되살아났다. 기계에 의존하는, 그리고 결국은 기계만으로도 충분히 작동하는 동시대가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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