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나앉은 스마트폰의 삶…TV 대신 '스피드 웹세상'에 빠지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서진욱 기자, 김유진 기자 | 2016.01.16 03:20

[웹콘텐츠 전성시대]<하> '저녁없는 1인 가족 시대'…다양한 콘텐츠 쏟아지고 짧은 소비 '대세'

편집자주 |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웹브로드캐스팅…. 오프라인의 전유물이었던 문화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의 부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주변 문화나 하위 문화로 인식되던 웹 기반의 콘텐츠가 오프라인의 콘텐츠 품격과 동등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인 취향’을 위한 콘텐츠가 다양성과 확장성을 무기로 본격화하고 있는 시대에, 여러 세대의 취향을 골고루 저격하는 웹 콘텐츠를 재조명했다.

웹툰, 웹드라마 등 웹콘텐츠의 소비 증가는 저녁이 없는 '1인 가족'의 현상과 맞물린다. 1990년대 TV매체를 넘어 2016년 모바일 시대가 낳은 새로운 풍경이기도 하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shinnara@

웹콘텐츠의 시작은 웹툰이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출판만화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생존’을 위한 작가들의 몸부림이 온라인으로 향한 것이다. 초창기엔 작가들이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다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이 ‘만화 속 세상’이라는 코너를 개설하면서 플랫폼이 본격 등장했다.

웹소설 역시 다음카카오, 문피아, 조아라 등의 플랫폼을 텃밭 삼아 시장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라온E&M에 소속된 한 무협소설 작가는 2014년 매출액이 10억 원을 넘길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한다.

케이블 방송사들의 웹드라마 제작도 이젠 보편화 추세로 들어섰다. 시장 규모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제작편수가 2014년 기준 전년보다 4배 증가했고, 재생 건수도 7배 정도 늘었다. MCN(다중채널네트워크) 기업이 등장하면서 1인 미디어(개인방송)도 속출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초고속 인터넷망의 확산으로 언제 어디서나 개인방송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다”며 “스타 배출이 이젠 지상파TV에서 개인방송으로 이동하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 1인 가족의 외로움…"찰나 못 견디는 현대인에게 최적화한 콘텐츠"

웹콘텐츠가 이렇게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저녁이 없는 1인 가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핵가족 시대에 가장 걸맞은 매체인 TV시절엔 대화 없는 가족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신해철의 노래에서 드러나듯, ‘온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 시간에도 아무 말 필요없다’가 비판의 중심이었다.

대화가 단절되고 가족 모두 TV를 보는 것이 90년대 TV매체가 준 부작용이었다면, 모바일 시대에선 대화 단절은커녕 가족끼리 마주 앉을 일조차 없다는 게 새로운 현상으로 떠올랐다. 저녁 시간 자체가 사라진 데다 가정 자체가 ‘1인 가족’ 형태를 띤 셈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2003년 처음으로 '만화 속 세상'이라는 코너를 개설, 최초의 웹툰 플랫폼이 됐다. /사진=다음 웹툰 화면 캡처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저녁이 없는 삶이 모바일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며 “모두 길바닥에 나와 폰 하나 들고 움직이는 라이프 스타일로 변해 1인 맞춤식 콘텐츠가 횡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모바일 환경은 아무런 공간을 소유하지 않은 채 몸과 매체가 밀착된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2시간의 영화나 책 한 권 읽기 힘들어하는 바쁜 현대인들은 그러나 ‘빠르고 다양한’ 콘텐츠에 열광하기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텍스트든 동영상이든 10~15분 내로 소비하려는 속도전에 민감하지만, 짧은 소비 못지않게 콘텐츠 향유 욕구는 더 늘었다는 것이다.

황진미 평론가는 “일과 놀이 시간이 구분되지 않은 현대인의 삶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부재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며 “매체 시장은 현대인의 찰나들이 증발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양하고 짧은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 '쌍방향 소통'…동영상 콘텐츠 '다양화' VS 깊이나 스케일에 '한계'

웹콘텐츠 시장에 뛰어드는 공급자는 전문가를 넘어 일반인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개인방송을 운영하는 송재룡 트레저헌터 대표는 “미국은 현재 100개 이상의 MCN 채널을 확보할 정도로 활황세”라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이 개인방송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아직까진 주변 문화로 인식되고 있지만 깊이 있는 정보와 고차원적 재미라는 요소를 놓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웹드라마 '72초 드라마'의 한 장면. 72초 드라마는 제목그대로 1화당 길이가 72초에 불과해 스마트폰으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사진='72초 드라마' 1화 캡처화면

무엇보다 웹드라마, 웹영화처럼 동영상에 대한 성장이 기대된다. 성지환 72초TV 대표는 “기존 1인 미디어 시장에선 콘텐츠의 수준 차이가 있었지만, 그 간격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며 “특히 기존 오프라인 영상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질 좋은 영상들이 나오고 있어 웹 동영상 시장이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바일 특성상 콘텐츠 제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움직이면서 보는 콘텐츠에 깊이나 화려함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블록버스터급 영상이나 문화적으로 깊이 있는 영상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집중해서 보기 어렵다”며 “투자 규모가 작고 오밀조밀한 재미있는 콘텐츠로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고정 취향 소비자'가 관건…"휘발성 콘텐츠에 대한 고민 깊어져야"

웹콘텐츠가 시장에서 견고한 수익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불특정 다수가 아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원하는 고정 취향 소비자들을 잡는 일이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이제 막 유료화 모델로 자리 잡은 웹툰에서 알 수 있듯 웹콘텐츠에 얼마나 많은 충성도 높은 이용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1인 미디어의 생존도 결국 특화된 정기 시청자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재홍(멀티미디어공학) 강릉원주대 교수는 “기존 로열 고객들이 선호 콘텐츠 분야에 자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콘텐츠에 발을 뻗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즉시성과 휘발성이 강한 웹콘텐츠의 특징을 감안하면, 지지층이 흔들릴 수 있어 콘텐츠 질에 대한 심도 있는 숙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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