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사실과 허구 사이를 떠도는 진실

머니투데이 이대연 평론가 | 2016.01.08 10:06

<21> 소수의견 vs 연평해전

편집자주 | ‘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 개봉하여 전혀 다른 길을 간 두 영화가 있다. 한 영화는 관객수 600만명으로 손익분기점 240만명의 2.5배나 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다른 한편은 관객수 38만명으로 손익분기점 120만명의 30% 선에 그쳤다.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의 얘기다. 많은 이들이 두 영화의 맞대결을 기대한 것에 비해 허무한 결과였다. ‘맞대결’을 기대한 이유는 영화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다. 각각의 영화가 보수와 진보를 대변한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연평해전>이 국가주의 애국 마케팅으로 관객들에게 호소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소수의견>이 보수적 권력의 행태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잣대로 양단하여 판단하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고유한 장르적 가치를 지닌 예술, 산업 분야로서 영화가 이와 같은 정치적 이념논쟁에 소비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를 함께 놓고 살펴보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이 보여주는 상이한 태도 때문이다. <연평해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강조하는 반면, <소수의견>은 특정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한다. <연평해전>은 사실성을, <소수의견>은 허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였다. <연평해전>에서의 ‘실화’는 물론 제3 연평해전이다. 그리고 <소수의견>이 말하는 특정사건은 용산참사이다.

실화영화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말한다. 그렇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각색 과정을 거친다.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들 때 거기에는 ‘옮기는 자의 주관’이 들어간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사건을 되돌아봄과 동시에 그 사건을 현재에 다시 소환하는 이유로서의 현재적 시선이 개입한다. 그런 까닭에 실화 영화는 감독의 재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화’를 둘러싸고 두 영화가 보여주는 이런 상반된 태도는 어떤 불안감을 유발한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것들이 모두 ‘영화’라는 것이며, 영화는 허구의 예술이라는 점이다.아무리 실화에 바탕을 두거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다고 해도-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각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와 감독의 재해석에 따른 허구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골격을 이루는 사실들만 남게 된다. 허구란 상징이나 알레고리 같은 기법을 통해 세계를 보편적으로 해석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시키고 질서화 하는 예술적 창작 원리이다.

<연평해전>은 보편적 휴머니즘을 말한다고 하기에는 내러티브의 설득력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그런가 하면 당시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허구적 이야기를 통과해 영화적 진실ㆍ, 삶의 진실로 나아가야 하는데 <연평해전>은 사실성을 강조함으로써 진실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무수한 해석과 정서적 강요가 영화를 구성한다. 그러니 질문할 수밖에. 몇몇 단편적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영화의 허구성을 희석시켜 얻고자 한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실제적 현실을 묘사한 (그러나 파편적인) 기록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소수의견>의 경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엄밀하게 <소수의견>과 용산참사의 일치점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부분이 실제 사건과 꼭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라 철거시위 현장에서의 비극적이고 아이러니한 사건의 발생이 우리 기억의 목록에서 해당 사건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런데 굳이 ‘용산참사와 관련이 없다’고 적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말은 역설적으로 보다 분명하게 용산참사를 지시하는 듯하다.

용산참사를 다룬 또 다른 영화 <두 개의 문>(2011)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빌려 사실과 진실의 간극을 메우려 한다. 시위, 진압, 사망이라는 몇 가지 사실로는 설명되지 않는 당일의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장르적 외피를 입고 있다. 법정드라마는 법정에서의 논리적 공방을 통해 해당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법적 정의를 확인하는 장르이다. 당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확인이거나 문제제기인 것이다. 결국 <소수의견>이 사실성보다 허구성에 중심을 두는 것은 용산참사라는 하나의 사건에 갇히지 않고 우리 사회에 대한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실화란 몇몇 사실의 포착이 아니라 그것이 지시하는 ‘진실’을 향해야 한다. 몇 가지 사실들을 배열한다 하여 그것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진실은 사실에 근거하지만 사실이 곧 진실일 수는 없다. 사실은 공간적 상황과 시간적 맥락을 지닌다. 진실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총체적 해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영화적 진실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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