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 이준석을 파헤치다<2부>

더리더 편승민 기자 | 2016.01.08 14:03

편집자주 | | 더리더에서는 7월호부터 '표창원의 리더 인사이드(Leader Inside)'를 신설한다. 이 코너에서는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장이 매월 여·야 정치인과 지자체장, 공기관장 중 차세대 리더로서 주목해야 할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위해 범죄심리학 전문가 표창원 소장이 나선 것이다.

기회의 평등 보다는 결과의 평등

표창원: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들어보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서, 아주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하진 않게 자라고, 열심히 경쟁해서 하버드 대학까지 가고… 그러면서 환상에 대한 깨짐을 겪었기 때문에 급격하게 사회를 바꾼다 던지, 시스템을 뜯어 고친다는 생각을 한다던가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준석: 시스템을 뜯어 고친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분배를 급격히 늘린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급격한 변화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의 창조경제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돈을 더 투입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걸 3년째 증명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급격한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한계를 절감한 것이고, 저는 좀 더 근본적인 것들에 투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관심 갖는 분야가 교육입니다.

제가 85년생으로서 가졌던 공교육에 대한 학업의 기대치와 지금 대학교 1학년인 95년생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치나 목표치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퇴임했지만 황우여 부총리도 그렇고 이번 정부 들어서 공교육의 내용을 줄이는 형태로 가고 있는데 저는 거기서 접근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교육을 내세우면서 첫째로 기회의 평등이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고, 둘째로는 창의적 교육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들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기회의 평등이란 말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어감과 달리 많이 변질된 것 같아요. 기회의 평등에 있어서 정부가 좀 더 교육에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한다면 기회의 평등보다는 초중등 교육에서는 '결과의 평등' 정도까지는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적어도 어떤 수준의 것을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요.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가적으로 스펙을 요구하게 되고, 이것이 또 다른 경쟁을 요구하게 되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 창조경제에 투입될 예산이었다면 이번 임기 내에 실현하기 보다는 10년 뒤 실행을 예상하고 초·중·고에 엄청난 투자를 했어야지 우리가 나중에 그 결과를 볼 수 있는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서 그런 근시안적인 정책들을 회피해보고 싶단 생각이 많아요.

표창원: 이준석식 세상의 변화라고 한다면 보수의 시각에서 현재의 시스템을 확실히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특히 교육이라고 한다면 고등학교, 대학까지 의무교육의 확대와 국가의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과 개입의 확대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이준석: 새누리당이 2012년 2월에 당명을 바꾸면서 정강정책을 바꿨어요. 정강정책은 당의 헌법과도 같은 조항들이에요. 당원이라면 이해하고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그 당시 정강정책을 개정하는 소위원회에 들어가있으면서 약간 알박기 식으로 해놓은 게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고등학교 교육의 완전한 무상화를 추구한다.'라고 되어있어요. 무상화는 단순 수업료 무상화가 아니에요. 방과후 학교비, 그에 수반되는 급식비, 교복비, 준비물비까지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인 형태의 무상화를 추구한다 라고 되어있어요. 그게 우리 당이 꼭 이루어야 할 정강정책중의 하나라는 것을 새누리당 당원들은 까먹었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것을 알박기 해놓은 거죠. 그래서 저는 그 희망을 아직 갖고 새누리당에 미련이 많이 남아있어요.

표창원: 지금 많은 사람들의 시각은 '고등학교 교육의 전면 무상화’라고 한다면 새누리당이나 보수정책이 아니라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이준석: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이 인기영합주의에 빠졌다는 거에요. 고등교육 무상화를 제가 집어넣은 이유는 교육이 중학교까지는 의무화가 되어있지만 중학교 끝나고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청년토론회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화두가 반값등록금이었어요. 제 소견은 이랬어요.

"반값등록금도 물론 공교육의 영역을 확장하는 취지에서 유의미 하다. 하지만 초·중등교육은 의무화 교육이고 고등학교 교육은 공공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해서 많은 지원이 못 이루어지고, 오히려 그보다 고등교육인 대학교를 반값등록금을 시행하는 것은 허리를 끊어먹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제가 놀랐던게 진보영역에 있는 한 청년 대표가 저한테 "그래도 고등학교는 돈 없어서 못 다니는 학생은 없지 않습니까?"라고 한 거예요. 이것은 확실히 교육이라는 영역에서 구호로만 접하는 사람과 현장에 있는 사람은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 개인적으로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에 대해 실망했습니다.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목표를 선명히 봤던 것이 표를 가진 대학생들에게 어필하자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인기영합주의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학등록금 지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우선순위를 고등학교에 두자는 것에 대해 그렇게 나왔던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반값등록금에 투입되는 재정이 4~5조 정도 되는데 고교무상화는 그 돈이면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을 먼저 정상화 시키고 대학의 지원을 늘려가는 것이 순리인데 그것이 끊어지다 보니 고등학교 교육이 오히려 민간에 떠넘겨져 사교육비가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솔직해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한테 동일한 예산을 주고 지급할 권한이 있다면 저는 고등학교에 먼저 넣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준석, 그가 정치를 택했던 이유

표창원: 앞서 계속 이야기 해준 이준석 위원이 대표로 있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은 차상위계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활동이었죠? 그것으로 인해 새누리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이준석: 제가 군대를 병역특례로 다녀왔어요. 그런데 제가 병특을 시작하기 전이 언제였냐면 싸이씨가 군대를 재입대 했던 시기였어요. 한창 산업기능요원에 대한 요건이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되던 시기에요. 산업기능 요원하면서 일반적으로는 명문대 출신의 경우에는 과외도 하고 하는데 저는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제가 또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그래서 뭘 해볼까 하다가 비영리단체를 하게 됐어요. 비영리단체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보통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생계걱정을 하고 힘들어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3년 동안 어쨌든 직장을 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월급 받으면서 비영리단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잘 될 수밖에 없었죠. 정부지원금 받으려고 쫓아다닐 일도 없고, 소설 쓰고 있을 이유도 없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굉장히 잘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경험 속에서 재미있는 일도 생기고 사람들도 만나다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저한테 가장 큰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보통 배운 대로 하는 성격이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불 나면 119에 신고를 하잖아요? 도둑이 들면 112로 신고해라. 저는 이런 것들을 곧이 곧대로 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배나사에서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가 졸업 후에 저를 찾아왔어요. 그때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었는데 갑자기 교복치마를 확 들어올리면서 허벅지를 보여주더라고요.

그래서 "너 어린애가 왜 이러냐 미쳤냐?" 이랬는데 그 허벅지 위에 빨간색으로 맞은 자국들이 굉장히 많은 거에요. 이게 뭐냐고 했더니 엄마한테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학생이 얘기하기를 "선생님, 사실 제가 13년동안 엄마한테 가정폭력을 당했는데 그동안 말을 못했던 거에요."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너희 엄마도 만나봤는데 그럴 분이 아닌데 무슨 소리냐?"고 했어요. 왜냐면 그런 걸 저는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그건 그냥 어디서 상처 입은 거 아니니? 맞았으면 뒤에 상처가 났겠지." 하니까 학생이 얘기하기를 "제가 중2때부터 엄마보다 키가 커지니까 이제는 엄마가 저를 의자에 묶어놓고 때려요." 하는 거에요. 저는 그 때 처음 알았어요. 의자에 묶어놓고 때리면 그렇게 된다는 걸.

그래서 그때 그 애를 빼내서 저희 집에서 재웠어요. 제가 여동생이 있어서 여동생이랑 함께 지내게 하면서 그동안 청소년보호시설을 알아봤어요. 그 사이에 또 그 엄마가 음독을 하고 그랬어요. 병원에서 위세척을 해서 살아났는데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엄마한테는 도저히 애를 못 보내겠는거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해서 마포구 쉼터로 보냈어요. 그런데 다음에 더 충격 받은 것이 1년쯤 지나서 제가 잘 지내냐고 연락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답하는 거에요. "선생님, 저 이제 엄마한테 맞는 게 아니라 여기 상급생한테 맞아요." 하는 거에요.

그 순간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사회적으로 일반인보다는 더 관심있어 하고 책임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거였거든요. 그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너무 심했던 거죠. 그런데 실상을 보니까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정책은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2년간 가르친 제자의 삶 하나도 바꾸기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그때 느꼈어요. 그때가 제가 배나사를 시작한지 4년차 정도 되었을 때였는데 1년 정도를 트라우마로 무너져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시기에 새누리당 최고위원격인 비대위원 제안이 왔어요. 그때 문득 '그래, 내가 여당의 넘버2, 3가 되면 이걸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꿈꾸는 청년은 멈추지 않는다


표창원: 참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잖아요? 경력을 보면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에서 스티브잡스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길을 들어서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걷고 어떤 꿈을 꿨을까요?

이준석: 제가 군대를 병특으로 간 이유가 꼭 IT업계로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병특을 마치고 1년 정도 회사를 하고 나서 바로 정치권 제안이 온 거죠. 그 부분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요.

제 인생에 27년은 IT쪽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준비가 많았는데 반대로 제가 준비하지 않았던 부분의 성공에 대해서 움찔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또 더더욱 내가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방송이라는 영역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진짜 인생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제가 31살에 이런 이야기 하기도 웃기지만 제 산만함이라는 것? 제 장점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딜 가든지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 업종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웃음) 제가 미디어에서 활동하면서 PD나 작가들과 밥도 많이 먹고 하는 이유는 나중에 정치를 한다면 진짜 전업으로 잘해보고 싶어서예요.

그러자면 미디어 지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전달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종합편성채널이나 케이블방송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시청률 표를 많이 들여다 보고 하는데 '내가 어떤 식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했을 때 전달력이 높고,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는가?’를 생각하게 되요. 저는 이미 매일매일 선거를 치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그 작은 선거들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가 있었는데 정치를 전업으로 하는 순간 그런 공부가 끊길까봐 그런 게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표창원: 그럼 지금 이 시점에서 31살 청년 정치인, 방송인 이준석의 꿈은 어떤 건가요?

이준석: 제 꿈이라고 한다면, 제가 아까 말한 '배나사’라는 단체가 '이왕 할거면 대한민국을 한 번 정복해보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여러 가지 과정들을 겪어보고 싶어요. 제가 방송으로 쌓아온 것을 어디에 털어줄까 하는 것도 고민의 과정이에요. 제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제 방송으로 얻은 인지도나 모든 것을 정치행보에 넣을 수도 있고요. 반대로 불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앞으로 출마를 하기 보다는 좀 더 해보고 싶은 배나사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고 하면 여기에 또 관심이 몰리겠죠.

저는 아직도 그 고민을 진지하게 해요. 앞으로 또 4년이라는 시간이 있을 텐데 앞으로 4년을 또 어떻게 쓸지 그리고 거기에 여러 변수들이 있어서 흔들리죠. 나간다고 하면 나간다고 비판이 있을 것이고 안 나간다고 하면 쫄아서 안 나간다고 하는 비판도 있을 것이고.(웃음) 그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고민들 때문에 헷갈립니다.

표창원: 마지막으로 이준석 위원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비난만 하는 분들도 있죠, 언론도 있고요. 그런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이준석: 저는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 정치인중에 강하게 큰 편이에요. 과거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과거에는 제 캡쳐 사진 하나 올려놓고 "이준석이 헛소리 했습니다." 하면 "역시 새누리당 종자답군요." 하는 식의 댓글들이 달리곤 했어요. 근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하는 방송을 몇 번씩 봤을 것이고 제가 나와서 진짜 이상한 헛소리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거든요. 오히려 그런 거 하면 요즘은 "앞뒤 맥락 자르고 가져오지 마세요." 이런 댓글이 달리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역시 긴 텀으로 봐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저를 비판하시는 분들도 아마 움찔움찔 놀라는 지점들이 있을 거예요. 저를 박근혜 키즈로만 생각했던 분들은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이라던지 과거 윤창중 비판할 때도 그렇고 당시에는 '코스프레 하냐?' 이랬겠지만 좀 있으면 어느 쪽이 더 제가 항상 하고 있는 생각과 가까운지 보게 되실 거예요. 그러면은 지금 과는 다른 지점에 대해 저한테 궁금해 하시는 것들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그때 언제든지 성실하게 답해드리겠습니다.

(1부 다시보기)

편승민 기자
carriepyun@mt.co.kr

☞프로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1985년 3월 출생(서울특별시) / 서울 과학고등학교 졸업 /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컴퓨터과학 학사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 現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 現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

▶표창원 범죄심리학연구소 소장
1966년 5월 3일 출생(경상북도 포항) / 경찰대 행정학 학사 / 엑시터대 대학원 석·박사 / 경찰청 제도개선기획단 연구관 /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 경찰청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 / 한국성폭력상담소 전문위원 / 한국 경찰발전연구회 회장 / 아시아경찰학회 회장 / 미국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대학 초빙교수 /現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표창원의 리더인사이드 - 이준석 편] 전문은 더리더(theLeader) 2016년 1월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리더 페이스북 페이지 보기

베스트 클릭

  1. 1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2. 2 '공황 탓 뺑소니' 김호중…두달전 "야한 생각으로 공황장애 극복"
  3. 3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4. 4 생활고 호소하던 김호중… 트롯 전향 4년만 '3억대 벤틀리' 뺑소니
  5. 5 "사람 안 바뀐다"…김호중 과거 불법도박·데이트폭력 재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