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 4·13]운명의 필적, 이성헌vs.우상호 5번째 리턴매치

머니투데이 황보람 기자 | 2016.01.04 16:36

[the300]'정치적 중립지대' 서대문갑…모든 것이 '변수'

마지막 승부 혹은 최후의 결전. 2016년 4·13 총선 서대문갑에서 이성헌 새누리당 후보(57)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후보(53)가 맞붙는다. 5번째 승부다. 2000년 첫 대결을 시작으로 16년이 흘렀다. '젊은피'로 정계에 입문한 30대들이 어느덧 50대가 됐다. 정치적 무게감이나 이미지도 달라졌다. 현 상황에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총선의 승자가 20대 국회에서 당 지도부와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는 3선 의원으로 우뚝 서게 된다는 점이다.

◇'현역 프리미엄'은 없었다…핑퐁·박빙 승부의 역사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3만4623표를 얻은 이성헌 후보(46.6%)가 우상호 후보(44.8%)를 누르고 먼저 국회에 입성했다. 1364표차. 박빙이었다. 반대로 17대 총선에서는 우 후보가 3만8795표(45.7%)를 얻어 1899표 차로 이 후보를 따돌렸다. 18대는 다시 이 후보 차례였다. 이 후보는 3만3463표를 차지해 51.6% 득표율로 2만8185표를 얻은 우 후보(43.5%)를 눌렀다. 19대는 다시 우 후보가 이 후보를 제치고 국회로 복귀했다.


이로써 현재 승률은 '2대2'다. 서대문갑은 승부를 예상하기 어려운 수도권 안에서도 표심을 읽기 힘든 '정치적 중간지대'로 분류된다. 또 북아현동 재개발 이후 원주민이 떠난 자리에 새로 입주한 유권자의 표심도 새로운 변수로 자리했다.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대학들이 지역구 내 포진하고 있어, 수천에 달하는 학생 유권자도 염두할 대상이다.


지금까지는 수도권 지역구의 특성상 서대문갑도 선거 때마다 '인물'보다는 '이슈'가 승부를 가름지었다. 16대 총선 때는 당시 국민회의 5선 김상현 의원이 터줏대감으로 버틴 가운데 두 후보가 '386세대' 간판을 걸고 도전장을 냈다. 이 후보는 앞선 15대 선거에서 591표 차로 석패해 절치부심하던 상황이었다. 이 후보는 '낙후된 지역발전'을 내걸고 16대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선거에서는 '탄핵정국'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 당초 두 후보의 리턴매치에서 현역 의원인 이 후보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정국 이후 판세가 급변하면서 우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 들어 다시 '대통령'이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야당은 선거에 참패했다. 언론에서는 2007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좌절한 야권 지지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46.1%를 기록했다.

이어 19대 총선에서는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우 후보가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이 후보를 10%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20대 총선의 표심을 가를 결정타는 무엇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야권에서 다시 한번 '정권심판론'을 내놓는다면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 후보와의 경쟁구도가 선명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탈당 사태와 야권 분열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 기류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선거에서 '정권 심판'보다 '야권 심판'이 힘을 얻을 것이란 평가다.

◇동지에서 필적으로…운명의 승부

두 후보는 연세대학교 81학번 동기 동문이다. 이 후보가 나이는 4살 더 많다. 가정형편 상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해 입학이 늦은 탓이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면서 둘은 서로 '동지'로 만난다.


이 후보는 민주화추진협의회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우 후보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 활동했고, 연세대에서 각각 총학생장(이성헌), 총학생회장(우상호)를 역임한 리더였다.

하지만 '정치적 노선'은 갈렸다. 이 후보는 보수 정당을, 우 후보는 진보 정당을 택함으로써 '필적'으로 돌아섰다.


이 후보는 1984년 총학생회 당시 5·18 광주항쟁 4주년을 맞이한 강연회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연사로 추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자택 봉쇄 상태였던 김 전 대통령은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했고 이 후보에게 미안해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은 이 후보에게 1985년 2월 총선에서 이민우 후보를 도와 달라고 권유했고 이 후보는 정치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이 후보는 김영삼정부에서 최연소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상도동계로 분류된다.

반면 우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낙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에 줄곧 몸담았다. 우 후보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고 이한열 열사의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시청 앞 광장에 100만 인파가 모인 가운데 국민장을 이끄는 등 486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386'이 어느새 50대...공통 리스크는 '새인물'?

젊은피로 정치권에 수혈된 두 후보는 16년 간 승부를 벌이면서 어느덧 50대로 접어들었다. 더이상 '젊은피'가 아니다. 참신성과 개혁을 내세우기에는 다소 빛이 바랜 게 사실이다. 2승씩 나눠가졌지만 지역구에서는 5번째 얼굴을 보인 기성 정치인이다.

이에 따라 '새인물'의 등장은 두 후보 모두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신·구' 대결로 구도가 짜여질 경우 두 후보 모두 위협받는 결과로 나타날 여지도 있다. 아직까지 수도권을 휩쓸 이슈나 야권연대 움직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후보의 1대1 구도로만 서대문갑을 풀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는 모든 지역구에 공통된 변수이기도 하다.


아직 정의당이나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 안철수 의원이 꾸릴 새 정당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도 속단할 수 없다. 향후 선거가 '다자구도'로 재편되면 각자의 전략도 180도 달라진다. 야권연대 가능성은 이미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또 '386세대'에 대한 국민 인식도 수면위로 떠오른 '리스크'로 작용한다. '386'마저 '기성'이 되어 버린 시점에서 두 후보가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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